벚굴
요즘 섬진강 일원은 꽃 잔치가 한창이다. 3월의 매화가 꽃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하니 이제 벚꽃이 망울을 터뜨려댄다. 구례-광양-하동 등 섬진강이 굽이치는 지역의 벚꽃은 이번 주부터 만개해 다음 주까지는 볼만할 것이다.
따사로운 봄볕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를 무렵 섬진강 광양 유역에는 귀한 봄철 미식거리가 제철을 만난다. 벚굴이 그것이다. 강굴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지닌 벚굴은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이른바 기수지역에서 자라는 초대형 굴이다. 알맹이가 어른 손바닥만 하니, 그 껍질이 큰 놈은 30cm 가량, 무슨 검정 고무신보다도 더 크다.
벚굴은 입춘을 지나 벚꽃이 만개할 즈음까지가 그 맛이 최고라 해서 이름도 그렇게 얻었다. 맛도 뻘굴 못지않은데, 바다와 강물이 섞여 적당히 간이 밴 것이 보통 바닷굴에 꼬막을 합쳐 놓은 듯 한 그런 오묘한 맛을 지녔다. 특히 간간한 듯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풍미를 더한다.
섬진강에서도 벚굴이 나는 곳은 정해져 있다. 벚굴은 수질이 깨끗한 곳에서 서식하는데, 하구 망덕포구를 기준으로 그 상류가 산지다. 요즈음 이 일대에서는 벚굴 채취가 한창이다. 망덕포구에서 뱃길로 20여 분 올라간 섬진강 돈탁마을 주변도 벚굴을 따는 주요 조업장이다. 본래는 더 아랫녘에서 채취되었는데, 서식지가 자꾸 상류로 이동하고 있다는 게 어민들의 전언이다. 이들은 그 이유를 섬진강 댐건설에 두고 있다. 평상시 댐에 강물을 가둬 두니 하류의 염분 조절이 물 흐르듯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강물의 염도도 높아져 강굴이나 재첩이 상류 쪽으로 올라와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덩달아 서식지도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소출도 예전의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는 게 어민들의 한숨이다.
벚굴 채취는 머구리 잠수부가 맡는다. 채취선이 강변 가까이에 닻을 내리면 잠수부가 수심 3~6m 강속으로 뛰어든다. 하루 조업은 평균 6~7시간가량 이뤄지는데, 2시간 연속 작업 후에 휴식을 취하는 방식이다.
벚굴 채취는 고난도 작업이다. 주로 UDT출신 등 베테랑 잠수부들이 조업에 나서는데, 시야가 1m도 채 확보되지 않은 물속에서 더듬어 가며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배 위의 선장과 잠수부의 호흡이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다. 선장은 배 위에 남아 생명줄을 통해 잠수부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방향을 알려 주는 등 채취를 지휘한다. 때문에 선장은 채취가 이뤄지는 동안 잠수부의 위치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자칫 물속에서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채취선에 올라 작업을 지켜보자니 벚굴 하나 까먹기가 송구해질 정도다. 잠수부가 차가운 수중으로 들어간 지 30여 분이 지나자 물속에서 큰 망 하나가 올라왔다. 벚굴이 가득 담긴 망을 크레인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갑판 위에 어른 운동화만한 큼지막한 벚굴이 수북하다. 선별 작업 도중 맛본 벚굴의 육질과 육즙은 바다굴과는 또 다른 맛과 식감이다. 짭조름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게 바다에서 나는 참굴에 비해 비릿함도 적은 편이다. 입 안 가득 도는 벚굴 특유의 향이 마치 섬진강의 봄을 통째로 맛보는 듯하다.
어민들은 벚굴이 큼지막한 만큼 일반 굴보다 영양가도 높고 피부미용에도 좋다고 자랑한다. 특히 기운을 넘치게 하는 강장제라는 귀띔도 빼놓지 않는다. 아울러 날 것으로 너무 많이 먹을 경우 자칫 탈이 날 수도 있음을 강조한다.
섬진강 망덕포구의 횟집에서는 봄철 벚굴을 구이나 찜, 전, 죽 등 다양한 요리로 만날 수 있다. 마침 이즈음은 섬진강 유역의 또 다른 명물, 재첩도 좋을 때이니 벚꽃 나들이와 함께 미식 여정을 꾸릴 법도 하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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