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골의 고로쇠 채취 .
<김형우 기자의 제철미식기행=고로쇠>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도 지나고, 3월이 코앞이다. 바람은 차갑지만 제주 등 남녘에는 벌써 화신(花信)이 들려온다.
계절이 어쩌면 그렇게 제철을 곧잘 찾아가는지 '절기 도둑은 할 수 없다'는 옛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봄소식은 지리산 깊은 산중에도 예외가 아니다. 아직 대자연속에 겨울의 느낌은 남아 있지만 햇살 내리쬐는 계곡에서는 벌써 개구리 산란도 확인할 수 있다
봄은 시각, 촉감, 향기 등 그야말로 온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계절이다. 그중 미각을 통한 봄맞이처럼 생생한 것이 또 없다.
산 중에서 찾은 봄의 전령사로는 단연 고로쇠를 꼽을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부드러워져 가는 훈풍 속에 맛보는 은은한 듯 달달한 고로쇠 한 잔은 온몸에 산골의 봄기운이 통째로 전해지는 듯하다.
산골 주민들의 봄맞이는 사뭇 이색적이다. 경칩 무렵 고로쇠 한 잔은 마셔줘야 개운한 느낌으로 활기찬 봄을 맞을 수 있다는 게 산중 사람들의 생각이다. 일종의 씻김의식과도 같은 것이랄까. 달짝지근하고도 말금한 고로쇠 수액 한 잔이면 봄도 느끼고, 우중충한 겨울 기분도 함께 씻어낼 수 있는 것이다.
고로쇠 수액은 경기도 남양주, 경남 함양,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광양, 울릉도 등 전국 곳곳에서 채취 된다. 물기 많은 계곡 주변에서 단풍나무과인 고로쇠나무가 밀생하기 때문이다. 그 중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군 피아골 계곡도 유명산지 중 하나다. 단풍으로 유명한 피아골의 마지막 동네인 직전마을 사람들은 경칩(3월5일)을 앞둔 이 무렵 고로쇠 수액 채취로 분주하다. 해발 700∼1000m의 고지대에 자생하는 수령 30∼100년생 고로쇠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한다.
고로쇠나무는 아무 때나 수액을 내놓지 않는다. 때문에 채취에도 때가 있다. 고로쇠나무 겨울눈이 봄을 감지하면 옥신(auxin)이라는 전령 물질을 각 기관에 보내게 되는데, 뿌리가 이를 감지하고 물과 양분을 지상부로 올려 보낸다. 이때가 적기다. 특히 살을 엘 듯 한 겨울 추위가 물러가고 포근한 아침을 맞았을 때, 바람이 잦아들고 일교차가 큰 날 수액을 쏟아 낸다.
고로쇠 나목에 꽂아둔 링거 줄처럼 생긴 가늘고 투명한 관을 통해 방울방울 수액이 흘러나오는데, 이를 통에 받아낸다. 보통 나무 한 그루가 한두 말의 고로쇠 수액을 쏟아낸다.
채취한 수액은 뼈에 이롭다고 해 골리수(骨利水)로도 불린다. 특히 칼슘 등 미네랄 성분이 물보다 40배나 많아 골다공증, 신경통, 위장병, 피부미용은 물론 오줌싸개에게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고로쇠 수액은 마시는 방법도 독특하다.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선 고로쇠 수액 한 말(18ℓ)을 4∼5명이 밤새도록 마셔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애써 실천하려 든다. 그래서 매년 이 맘 때면 지리산 자락의 민박집 등에는 밤새 고로쇠 수액을 마시는 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맹물이라면 그렇게 먹을 수가 없을 텐데, 고로쇠 수액은 다르다. 그렇다고 탈도 나지 않는다. 단, 입이 심심하니 마른 오징어며 북어포, 오이 등을 곁들이기도 한다.
한편 고로쇠는 그 물로 끓인 토종닭 백숙, 고로쇠 영양솥밥 등의 메뉴로도 접할 수가 있다. 산지 마을 주민들은 채취한 고로쇠 수액을 택배로도 보내준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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