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의 양미리구이
이맘때 제철 별미거리로는 양미리를 빼놓을 수 없다. 고급생선이 넘쳐나는 요즘이야 그다지 각광받지 못하는 어종이지만 양미리는 오랜 세월 서민의 밥상을 지켜 온 추억의 반찬이다. 겨울을 나기위해 김장을 하듯, 과거 싱싱한 생선을 구하기 힘든 산골 오지마을에서의 양미리 한 두름이란 든든한 월동준비에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런 양미리가 제철을 맞았다.
양미리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할린, 오호츠크 해 등 주로 극동지역의 바다에 서식하는 몸길이 20~30㎝의 한류성 어족이다. 그 모습이 '미꾸라지 같다'고들 하지만 등이 푸르고 아랫배 쪽은 은백색인데다 주둥이가 뾰족해 꽁치에 더 가깝다. 일반적으로 양미리는 안주용 소금구이, 밥반찬으로 꾸둑꾸둑하게 말려 조려 먹는다. 산지에서는 구이 말고도 회, 칼국수, 찌개 등 다양한 요리법이 발달해 있다. 특히 '바다 미꾸라지'라는 별명에 걸맞게 갈아서 추어탕처럼 끓여 먹는 영양식이기도 하다.
양미리 본연의 맛은 역시 포구에서 맛보는 구이가 최고다. 어부들은 이른 아침 삭풍 속에 조업을 마치고 나면 싱싱한 양미리구이에 소주 한잔으로 한기를 녹여 낸다. 돌멩이를 주워 다가 석쇠를 걸쳐두고 불을 피워 굵은 소금 흩뿌려 먹는 양미리의 맛이 일품이다. 아주머니들이 양미리를 그물에서 떼어내는 사이 뱃사람들은 불을 피워 석쇠를 얹고 양미리를 척척 늘어놓는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먹음직한 양미리 암컷은 홍시색깔의 알을 배 밖으로 내밀고, 숫놈은 하얀 곤이를 드러낸다. 뜨거운 양미리를 호호 불어가며 먹는 맛이란 필설로 다 할 수 없다. 꽁치가 다소 퍽퍽하다면 양미리는 부드럽고도 기름진 맛을 낸다. 양미리가 이런 맛을 지녔다니 새삼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다. 산골 출신들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그런 맛이랄까. 양미리 만큼은 산지의 생물구이가 더 맛나기 때문이다.
양미리는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고성 아야진, 속초, 주문진, 삼척 등지가 주산지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이들 동해안 포구는 양미리로 넘쳐난다. 그중 아야진과 속초는 11~12월, 아랫녘 삼척 일원은 12~1월이 성어기다.
헌데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해역의 양미리 작황이 신통치가 않다. 올해는 어획고가 더 줄었다. 속초 동명항의 경우 지난 12월 초 현재 146톤이 잡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 199톤에 비해 25%가까이 줄어든 물량이다. 그나마 잡히는 것들도 무슨 미꾸라지처럼 자잘하다고 불평이다. 삼척 임원항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임원항 식당주인들은 "올 겨울에는 아직 양미리 꼴을 볼 수가 없다"고 한숨이다. 몇 년 전만해도 삼척 임원항에는 하루 수십 톤의 양미리가 잡혀 전국으로 실려 나갔다.
덩달아 가격도 올랐다. 60kg 한 상자에 9~10만 원 선으로 지난해 보다 오름세다. 동명항에서는 양미리 한 두름(20마리)에 5000원 선으로, 지난해 보다. 1000~2000원이 올랐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포구식당가의 단골 밑반찬이었던 양미리 조림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어민들은 양미리의 작황부진 원인으로 수온상승과 치어 남획을 꼽았다. 최근 몇 년 동해안 일원은 수온상승에 따른 어종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국민생선 명태는 아예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속초해역에서는 제주 방어가 잡히는가 하면, 여름 어종 임연수가 초겨울 그물에도 걸린다.
겨울 동해의 매력은 '툭 트임'이다. 갑갑한 일상탈출을 기대한다면 차가움 속에 펼쳐지는 망망대해의 장쾌함을 찾아 떠나는 것도 연말 괜찮은 선택이다. 이즈음 속초 동명항 양미리부두를 찾으면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포장마차촌(난전 1~11호)에서 싱싱한 것들을 구워내는 유혹의 향기다. 귀하신 몸으로 변해가는 양미리구이를 맛보며 추억을 음미하는 것도 일상의 느릿한 쉼표가 된다.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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