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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의 좌석 차등제, 가격 인상 위한 꼼수?
기사입력| 2016-04-22 09:00:26
겉으로는 소비자 선택의 다양화를 외쳤지만 결론은 가격 인상을 위한 꼼수였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가 지난달 3일부터 실시한 '좌석 차등제'에 관객들이 속을 끓이고 있다.
CGV는 좌석 차등제를 도입하며 소비자를 생각한 정책이라고 설명했지만, 실행 한 달 뒤의 성과를 살펴보면 사실상 영화 관람료 인상 효과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전체 극장 관객수는 1126만명, 극장 매출액은 89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관객수는 6만명 줄었지만, 매출액은 오히려 1억원 증가한 수치다.
1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라곤 CGV가 좌석별·시간대별로 관람료를 세분화한 것 뿐이란 점을 감안하면, 결국은 CGV가 가격 인상을 위해 꼼수를 부렸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손해 보는 이 느낌은 뭐지?
좌석 차등제의 핵심은 좋은 좌석은 더 비싸게, 나쁜 좌석은 더 싸게다. 좌석은 가격별로 이코노미존, 스탠드다존, 프라임존으로 나뉜다. 주말 기준으로 앞쪽 좌석인 이코노미존은 이전보다 1000원이 싼 9000원, 중간인 스탠다드존은 기존 가격과 동일한 1만원, 뒤쪽인 프라임존은 1000원이 바싼 1만1000원이다.
어찌보면 합리적인 가격 시스템 같지만, 소비자 불만이 폭증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서울 잠원동에 사는 이모씨는 모처럼 CGV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달라진 가격 체계에 적지않게 당황했다. 이씨는 직원으로부터 '좌석은 어느 단계로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에 얼떨결에 프라임존을 택했다. 하지만 극장 안에 들어가보니 관람 환경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데 1000원만 더 내고 영화를 본다는 생각에 상영 시간 내내 불쾌함을 느껴야 했다.
1000원이 싼 이코노미존보다 1000원이 비싼 프라임존이 훨씬 많은 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코노미존은 관람하기 불편한 앞좌석 2~3번째 줄로 지정되어 있고, 프라임존은 중앙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프라임존이 이코노미존의 2배 이상이 대부분이다. 결국 비교적 잘 보이는 뒤쪽 자리는 1000원을 더 내고 봐야 한다는 불만이 커질 수 밖에 없다.
▶가격 인상보다 더 열받게 한 것은?
좌석 차등제 실시 이후 가격 인상의 느낌보다 관객들을 더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영화가 시작된 뒤 좋은 좌석으로 옮겨 앉는 '메뚜기족'이다. 프라임존을 끊었던 이씨는 뒤늦은 후회와 함께 이코노미존을 끊고 들어와 메뚜기족을 했으면 기존보다 2000원을 절약했을 것이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CGV가 좌석 차등제를 실시한 이후 메뚜기족에 대한 글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유혹에 빠졌다는 증거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 인터넷 게시판에는 메뚜기족이 추가로 돈을 지불한 사연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영화가 끝날 무렵 극장 직원들이 들어와 좌석을 확인하고 자리를 무단으로 옮긴 관객에게 추가 결제를 요구했다는 것. 이와 관련 CGV 측은 추가 결제를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직원이 점검 차원에서 들어갔다가 해당 고객에게 '제자리에서 보셔야죠'라고 했고, 이 고객은 추가 결제를 하겠다고 했다"고 해명했다.
메뚜기족 때문에 영화를 보는데 지장을 받는다는 불평도 있다. 영화가 시작된 뒤 뒤늦게 자기 자리에 왔는데 다른 사람이 앉아있어 이를 시정하느라 소음이 발생한 것을 비롯해 불이 꺼지는 것과 동시에 좋은 자리를 앉기 위한 이동이 일어나 영화 시작 이후 10분간은 스크린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것.
그렇다면 좌석 차등제 이후 메뚜기족은 얼마나 늘었을까. 이와 관련 CGV 측은 "좌석 차등제 이전에도 자리를 옮기는 관객은 있어왔다. 실상 같은 기간 지난해와 비교해 고객 불만접수처에 올라온 자리 이동 고객에 대한 불만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며 "심지어 불만이 거의 없다할 정도로 미미하다. 대부분 선택한 좌석에서 관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리 이동 고객을 감시하거나 해당 고객에게 추가 가격을 징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가격 인상 꼼수, 사실인가 확인해보니
CGV는 '좌석 차등제'를 실시하며 관객을 생각한 조치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는 지난달 3일부터 9일까지 7일간 서울지역 CGV 상영관 5곳의 좌석별 예약상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코노미존은 전체 좌석수 1만9376개 중 예약된 좌석이 870개에 불과했지만, 프라임존은 3만4825개 좌석 중 1만535명의 관객이 좌석을 예약했다. 두 구역의 관객수는 약 1만명의 차이가 존재했고 '1만명×1000원=약 1000만원'의 추가 수익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이를 전체 관객수로 나눠보면 점유 좌석당 약 430원의 가격인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가감시센터 측은 "프라임존 1000원 인상에 따른 연간 추가수익은 상당할 것으로 보이며, 소비자 선택 확대를 빌미로 자리마다 가격을 나눠놓고 실질적으로는 가격인상 효과 및 수익증대를 꾀한 것 아닌지 의구심이 제기된다"며 "특히 영화관은 콘서트, 뮤지컬, 스포츠 경기와 같이 규모에 대한 체감 수준이 크게 나지 않고 비행기처럼 좌석의 퀄리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CGV는 설득력 없고 소비자 혜택도 없는 좌석별 관람료 차등화가 아니라 매점가격 합리화를 포함한 서비스 개선을 통해 고객 만족도를 높여 고객들이 영화관을 더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CGV의 편법 가격인상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CGV 측은 "실제 주중 시간대는 기존 대비 더욱 세분화 되면서 가격이 인하됐고, 주말 가격대는 전반적으로 인상 효과가 있다. 인상된 부분도 있지만 인하된 부분도 있기에 가격 다양화라는 표현을 한 것"이라며 "주중 브런치 시간대 도입으로 낮 시간에 영화를 많이 보는 주부와 대학생 중장년층에게, 주중 문라이트 시간대 도입으로 저녁시간에 영화를 즐겨보는 대학생 직장인들에게 부담이 특히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격 다양화는 이제 막 한 달을 넘긴 상황"이라며 "좌석 차등제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기에 이미 몇 차례 조정이 있었고 계속 고객의 의견을 들으며 조정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편 또 다른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롯데시네마는 21일 요금체계 개편을 발표했다. 오는 27일부터 도입될 새 요금 체계는 논란이 되고 있는 좌석 차등제는 뺀 '시간대별 차등 요금제'만 적용됐다. 롯데시네마는 "주중 시간대 및 주말 심야 시간대에 대한 요금 인하를 통해 특정 시간대에 집중되는 관객을 분산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