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대보그룹 직원 단합 산행서 사망…강제성 논란
기사입력| 2016-01-07 09:08:01
대보그룹의 무리한 직원건강 관리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대보그룹이 지난달 25일 크리스마스에 직원 단합 및 체력 강화를 위해 실시한 지리산 등산행사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등산을 시작한지 4시간여 만에 대보정보통신 사업부 김모 차장이 쓰러졌고, 구조헬기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숨진 상태였다. 부검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경찰 등은 사인을 심근경색(심장마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가족과 김모 차장의 동료들은 무리한 산행이 사고를 불러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등산 전날 근무를 마치고 버스로 서울에서 남원으로 이동, 새벽 4시부터 산행이 이뤄졌던 만큼 과로사라는 것이다.
▶강제 vs 자율 엇갈린 주장 "회사원들의 비애"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대보그룹은 '기업경쟁력은 직원 개개인의 강한 체력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면서 산행에 대한 강제성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일단 대보그룹 측은 산행의 강제성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대보그룹 관계자는 "업무나 건강상의 문제가 있을 경우 산행을 하지 않아도 됐다"며 "산행 중간에 건강이 좋지 않을 경우 하산할 것을 알렸다"고 말했다.
그런데 유가족 및 동료 직원들의 입장은 회사측과 전혀 다르다. 강제산행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의 지시로 이뤄진 산행인 만큼 강제성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 회장의 지시로 매년 연례행사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단순 건강을 이유로 산행에 불참할 직원은 있을 수 있겠느냐는 설명이다. 특히 대보의 한 직원은 "회장의 지시로 강제적 등산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행사에 참가하지 못한 직원은 자비로 지리산에 가서 '천왕봉 등정 인증샷'을 찍어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강제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실제 사고가 발생했던 지난달 25일 산행은 단순 단합대회 차원의 산행이 아니었다. 산행의 명칭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사고가 발생했던 산행은 '대보그룹 한마음 가을산행'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겨울임에도 가을산행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것은 지난해 10월 1차 500여명 가량의 지리산 산행에 참여하지 못한 그룹 직원 중 현장 근무 직원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2차 산행이었기 때문이다.
대보그룹 측은 2차 산행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 자비로 천왕봉 등정 인증샷을 찍어 제출할 것을 요구, 크리스마스이브임에도 2차 산행에 직원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보그룹은 지난해 10월 1차 가을산행 당시 500여명의 임직원이 무박 2일로 지리산 증산리에서 시작해 법계사, 천왕봉, 장터목, 백무동을 거치는 13㎞(12시간) 거리의 장거리 코스를 완주했다고 홍보한 바 있다. 기업 경쟁력이 개인의 체력에서 나오는 만큼 직원건강에 신경 쓰고 있는 점을 기업경쟁력으로 활용한 셈이다.
대보그룹은 직원 건강관리를 내세우며 점심시간 엘리베이터 사용금지, 엘리베이터 사용 적발 시 지하부터 지상 10층까지 왕복 20회, 체중 감량 지시 및 각서 제출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자율적이라는 포장을 한다고 해도 회장의 지시로 이뤄진 일이라면 이를 무시하고 넘어 갈 일반 회사원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보그룹은 직원 건강관리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산행 뿐 아니라 직원 체중감량 각서 등을 받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어 사생활 침해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듯 보인다"고 전했다.
▶대보그룹, "최대한 유가족 지원하겠다"
대보그룹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유가족 지원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직원 건강관리와 관련된 산행과 엘리베이터 이용금지 등의 사내기업문화 개선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상태다. 대보그룹 관계자는 "향후 산재처리 등 회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에 나설 계획"이라며 "사내기업문화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내부적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보그룹처럼 기업 소유주나 경영진의 과도한 지시·행동이 논란을 부른 경우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이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으로 폭행과 욕설을 했음이 드러나 공개 사과를 하는 등 큰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한편 대보그룹은 1981년 설립된 대보실업을 바탕으로 성장한 회사다. 고속도로 휴게소 사업과 건설, 골프장 사업 등이 주력 분야다. 특히 고속도로, 국도, 철도, 지하철, 고속철도 등 대형 국가기간사업인 관급공사를 주로 수주하며 급성장해 2013년엔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섰다. 최등규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내실을 다지며 그룹을 탄탄하게 만들어 중견기업으로 일궈냈다.
그러나 최 회장은 2008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허위 세금계산서를 매입하거나 거래대금을 과다 계상하는 방식 등을 통해 대보그룹 4개 계열사로부터 모두 210억 가량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2014년 구속, 지난해 6월 징역 3년6개월에 추징금 9000만원을 선고받고 구속됐다가 다섯 달 뒤에 보석으로 풀려난 바 있다. 현재 2심이 진행되고 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