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큐셀 김동관 전무
연말 재계 인사가 관심을 받고 있다.
재계는 정기 임원승진을 발표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성과주의, 신사업 발굴, 현장중심 등을 인사의 특징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벌가(家) 3~4세의 대규모 약진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업들은 재벌가 자제들이 신사업에서 높은 실적을 세웠으며, 젊은 감각을 통한 현장 경영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초고속 승진'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들도 많다. 주로 현장 경험의 부족과 능력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금수저·은수저·흙수저 등의 '수저계급론'과 맞물리면서 '금수저'인 재벌가 자제들의 초고속 승진을 꼬집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재벌가 3·4세 대규모 약진, 이유는?
올해 연말 주요 그룹 정기 인사에서 30·40대 재벌가 3, 4세들이 대거 승진했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지난해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 재벌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재벌가 자제들에 대한 인사를 자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한 재계 전반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점과 함께 기업들의 신사업에 젊은 재벌家 자제들이 속속 '투입'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주장도 있다.
올해 재벌가 3~4세가 승진한 대기업은 한화, 현대중공업, GS, 신세계, 두산, 코오롱 등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영업실장(32)은 6일 발표된 정기인사를 통해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지난해 12월 김 실장은 입사한 지 4년 만에 상무에 올랐다가 또다시 1년 만에 전무로 파격 승진한 것.
한화 관계자는 "김 실장이 지난 2월 태양광 계열사를 한화큐셀로 통합해 셀 생산규모 기준 세계 1위의 태양광 회사를 탄생시키는데 기여했고, 이후 성공적 구조조정과 생산효율성 개선 뿐 아니라, 태양광업계 단일 최대계약으로 불리는 미국 넥스트에라(NextEra)와의 공급계약 체결을 포함한 세계 전역에서의 대규모 사업수주 등을 통해 올해 한화큐셀이 3분기 매출 4억2720만달러, 순이익 5240만달러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데 핵심적인 공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기획총괄부문장(33)은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정 부문장도 지난해 10월 부장에서 상무보를 건너뛰어 상무로 승진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정기선 전무는 사우디 아람코 및 인도와의 협력사업을 책임지고 수행할 뿐 아니라 조선과 해양 영업을 통합하는 영업본부의 총괄부문장을 겸직해 영업 최일선에서 발로 뛰면서 해외 선주들을 직접 만나는 등 수주 활동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딸이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부사장(43)은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1996년 상무로 조선호텔에 입사해 2009년 신세계 부사장 자리에 오른 정 사장은 6년 만에 '부' 자를 떼고 사장이 됐다.
지난주 발표된 GS그룹 인사는 2세 시대가 막을 내리고 4세들이 전면에 포진한 것이 특징이다. 고(故) 허만정 창업주의 증손자이자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장남인 허준홍 GS칼텍스 법인사업부문장(40)은 지난 2012년 상무에 올랐다가 이번에 전무로 승진했다. 또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허윤홍 GS건설 사업지원실장(36)도 상무에서 전무로 올라갔다. 허윤홍 실장은 과거 3개월간 GS칼텍스 주유소의 '주유원'으로 일하는 등 현장에서 하드트레이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도 4세 체제에 시동을 걸었다. 고(故) 박승직 창업자의 증손자이자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손자,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 오리콤 크리에이티브총괄 부사장(36)은 두산이 올해 운영권을 따낸 면세점 유통사업 부문의 전략담당 전무도 맡는다. 박 부사장은 세계 광고인들의 등용문인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출신으로, 2006년 독립광고회사인 빅앤트를 설립했다. 박 부사장은 지난해 10월 두산그룹 계열 광고회사인 오리콤의 부사장으로 영입돼 본격 그룹 업무에 합류했다.
아울러 코오롱가 4세도 임원 대열에 합류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진단실 부장(31)은 상무보로 승진해 이번에 '별'을 달았다. 이 상무보는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로 입사해 지난해 4월 부장으로 승진했다.
▶3.5년 vs 22.1년…'금수저'는 달랐다?
총수가 있는 30대 그룹의 재벌가 3,4세는 평균 28세에 입사해 31.5세에 임원 승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별'을 다는데 평균 3.5년이 걸리는 셈이다. 반면 사무직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으로 승진하기까지 소요되는 연수는 평균 22.1년에 달한다. 게다가 신입사원 1000명 중 임원으로 승진하는 비율은 0.47%에 불과하다. 1000명 중 4.7명만이 임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차이가 재벌가 3, 4세의 초고속 승진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이유 중 하나다.
올해 초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대주주 일가가 있는 30대 그룹 총수 직계 3, 4세 44명의 임원 승진 기간을 조사한 결과, 남자는 평균 28.5세에 입사해 32세에 임원으로 승진했고, 여자는 25.6세에 입사해 서른도 되기 전인 29.7세에 별을 달았다. 임원 승진까지 걸리는 기간은 남자가 평균 3.5년이었고, 여자는 4년이었다.
입사 하자마자 바로 임원이 돼 경영에 참여한 3, 4세도 9명이나 됐다. 재계 3, 4세의 3명 중 1명은 바로 임원으로 입사한 셈이다. 이명희 회장의 자녀인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사장은 각각 27세와 24세에 신세계와 조선호텔의 이사대우와 상무보로 경영에 참여했다. 정유경 사장의 경우는 오너가 있는 30대 그룹 경영참여 3·4세 중 최연소로 '별'을 달았다.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의 장남인 김정한 라파바이오 사장과 3남 김신한 대성산업 사장도 30세와 31세에 계열사인 대성산업과 대성산업가스에 이사로 선임됐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장남 조원국 한진중공업 전무(임원승진 나이 32세)를 비롯해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 3남 이해창 대림코퍼레이션 부사장(36), 이수영 OCI 회장 장남 이우현 사장(37) 등도 임원으로 바로 입사한 경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은 2002년 7월 옛 제일모직 부장으로 입사해 2.5년 만인 2005년 1월 임원으로 승진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장녀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도 임원 승진 기간이 2.2년에 불과했다.
반대로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장남인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은 입사 후 임원까지의 기간이 10년으로 가장 길었고, 허창수 회장의 장남 허윤홍 상무(9.9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9.4년)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9년),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9년)이 긴 편에 속한다.
▶재벌 3, 4세 경영능력 '기대이하' 평가도
그렇다면 재벌 3, 4세들은 과연 경영능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을까. 이같은 물음에 의문점을 제시한 조사결과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올 상반기 경제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재벌총수 일가의 경영권 세습과 전문가 인식도 분석' 보고서를 냈다. 주로 소유권 승계 과정, 경영능력, 도덕성 등을 종합 평가했다.
이 보고서는 경제개혁연구소가 KBS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과 공동으로 기획해 작성한 것으로 재벌가 3~4세, 11명(임원 경력 5년 이상)의 경영능력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이들은 경영능력에 대해 평균 35.79점을 받았다. 결국 '기대 이하'라는 평가다.
또한 현재와 같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질의에서도 부정적인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재벌총수 일가의 자녀에 대한 경영권 승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56%로 '바람직하다'(14%) 보다 4배 많았다.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중복응답 가능)는 ▲경영능력 부재(36.7%) ▲불법·편법적인 부의 상속(30.8%) ▲경쟁 없는 승계(19.2%) ▲불투명성(13.3%)이라는 답변이 있었다. 또한 자녀에 대한 경영권 승계는 기업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질문에도 부정적 의견이 58%로 긍정의견 6%에 비해 무려 9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부정적인 견해가 많은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승진 기간', '경영능력 검증', '후계자 선정과정에서의 경쟁' 승계과정의 투명성에서 평균 2.42점~2.58점으로 매우 낮은 점수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3, 4세 경영인은 기업의 상속 과정이 선대보다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일부에서는 이들이 경영능력을 꼼꼼히 검증받고 만약 인정받지 못하면 과감히 경영권을 포기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