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중공업 위기 권오갑-박대영, 돌파구 찾을까
기사입력| 2015-11-05 11:05:26
먹구름, 좌초 위기, 최초 조단위 적자….
희망의 빛은 보이지 않는다. 온통 어둡기만 하다.
국내 조선사 '빅3', 힘겹다. 적자는 쌓여만 간다. 나아질 기미는 없다. 그야말로 '위기'다.
모두 조단위 적자가 유력하다. '빅3' 합쳐 약 8조원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사상 유례가 없는 적자폭이다. "국내 조선업계가 좌초 위기에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3분기만 놓고 보자. 대우조선해양은 1조2171억원의 적자를 냈다. 현대중공업은 678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나마 삼성중공업은 846억원의 영업이익을 남겼다. 하지만 2분기에 1조5491억원 적자였다. 의미있는 실적개선이 아니다.
"전망은 어둡지 않다"라고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산넘어 산'이다. 주력인 해양플랜트 악재에 발목이 '꽉' 잡혔다.
위기의 조선업계, 어느 때보다 수장들의 어깨가 무겁다. 일단 '주인 없는' 대우조선해양은 잠시 빼놓겠다. 가장 큰 형 '현대중공업'은 권오갑 사장이 이끌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박대영 사장이 맡고 있다.
두 CEO의 숙제, 두말하면 잔소리다. 실적이다. '위기의 두남자'. 과연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까.
▶1위 현대중공업 vs 3위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의 모태는 현대건설 조선사업부다. 1970년 3월에 생겼다. 정부의 요청사항이었다.
1973년 분사, 현대조선중공업(주) 간판을 달았다. 초대 대표이사는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다.
1978년 2월, 사명을 현대중공업(주)로 바꾸었다. 1979년, 국내 최초로 컨테이너선을 건조했다. 1980년 한국형 구축함 1호 진수, 같은 해 자동차운반선을 인도했다. 역시 국내 최초다.
2002년 2월, '홀로서기'에 나섰다. 현대미포조선과 함께 현대그룹에서 공식 분리됐다.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재출범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은 세계 굴지의 조선소로 커나갔다. 2011년 세계 최초로 선박 1700척을 인도했다. 같은해 세계 최대 19만t급 쇄빙상선을 개발했다. 2014년에는 '바다 위 LNG 기지' 건조에 성공했다. 역시 세계 최초다. 2015년 5월에는 세계 최초로 선박 총 2000척을 인도했다. 미국 경제지 '포춘'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에 9년 연속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사정이 좋지 않다. 지난해 3조25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는 1조1450억원의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삼성중공업은 세계 톱이다. LNG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부문 시장점유율 1위다. 세계 최초로 양방향 쇄빙유조선도 건조했다.
1974년 8월에 문을 열었다. 정부의 중공업 육성정책과 그룹의 야심이 맞아떨어졌다. 1983년 삼성조선 삼성중공업 대성중공업을 통합했다. 2005년에는 국내 최초로 러시아 국영 해운사로부터 쇄빙유조선 3척을 수주했다. 2007년, 세계 최대 사할린 '필턴B' 해양플랫폼을 건조했다. 같은 해 극지용 드릴십과 쇄빙유조선을 건조했다. 세계 최초다. 이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드릴십, FPSO(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 분야에서 세계 최다 건조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전망이 어둡다. 지난해 1830억원 흑자에서 약 1조4040억원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특히 적자의 원인인 해양플랜트 수주량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어 걱정이 많다.
▶'현장통'의 전략은
권 사장과 박 사장, 닮았다. '현장통'이다. 특히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중시한다.
권 사장은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런던사무소 외자구매부 부장, 서울사무소 전무를 거쳐 부사장에 올랐다.
2010년 현대오일뱅크 초대 사장에 취임했다. 매주 충남 대산 공장으로 출근, 현장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금요일 저녁에는 직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일일 주유원으로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이같은 현장경영과 스킨십경영으로 2011년에는 노조로부터 임금협상을 위임받았다.
이같은 직원과의 스킨십은 아래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이와 함께 '워커홀릭'으로도 유명하다. 현대오일뱅크 대표시절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께서는 늘 새벽 3시30분 울산공장으로 출발했는데 나는 오전 5시에 출발하니 이른 것도 아니다. 오전 6시30분에 도착하면 옷 갈아입고 6시50분부터 중역들과 아침을 하며 회의를 한다"고 한 말이 그의 스타일을 말해준다.
현대오일뱅크 시절 큰 성과도 냈다. 정유사 최하위였던 점유율(18%)을 4%나 끌어올렸다. 2013년 12월과 2014년 1월에는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으로 복귀한 건 지난해다. 위기의 중공업을 구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취임과 함께 현장으로 뛰어갔다. 파업을 외치는 노조를 달래기 위해서다. 공장 정문에서 노조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한 번 더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를 때까지 월급도 반납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월급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노조와의 갈등이 심했다. 취임 후 1년간 실적보다는 구조조정이 중점 목표였다. 지난 6월에서야 권 사장은 "우리의 역량을 모으기 위해 인위적인 인력구조조정은 전면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결국 이제 권 사장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를 시간이다. 실적회복이 발등의 불이다.
박 사장은 소통과 배려를 중시한다. 말단 직원까지 챙긴다. 2012년 이용근 노사협 위원장이 20미터 높이의 크레인에서 농성할 당시 직접 올라가 담판을 벌인 일화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1977년 입사, 1984년 경남 거제조선소로 옮겼다. 이후 생산운영실장, 조선영업실 특수선 영업팀장, 삼성중공업 조선소장 등을 거쳤다. 조선과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공법혁신을 주도, 고부가제품 중심의 생산체제로 변모시키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3년 사장에 취임했다. 권 사장과 마찬가지로 '실적개선'의 '특명'을 받았다.
하지만 성적표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2013년 6월 30억달러의 나이지리아 에지나 FPSO 프로젝트를 수주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을 따돌렸다. 그러나 주력사업인 해양플랜트 손실이 커지기 시작했다. 2013년 9000억원이 넘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1830억으로 뚝 떨어졌다. 2006년(990억원) 이후 최저치다. 올해는 적자가 유력하다.
여기에 회사와의 '엇박자'로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희망퇴직 실시,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 문제에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본인의 말'을 지키지 못했다. "희망퇴직은 없다"고 한 다음날,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희망퇴직 여부를 통보했다. "합병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양사는 '합병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공시했다.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모양새다. '발등의 불'을 꺼야할 시간이 권 사장보다 더 촉박해 보인다.
똑같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권 사장과 박 사장, 과연 어떤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신보순기자 bsshi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