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다국적 담배 제조·판매 회사인 한국필립모리스가 매년 수천억원에 달하는 로열티와 배당금을 외국 대주주에게 지급하면서도 국내 기부에는 인색하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사진은 한국필립모리스의 양산공장 외부 모습. 사진제공=한국필립모리스
KT&G에 이어 국내 담배시장에서 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는 필립모리스가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는 행태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매년 거액의 로열티를 본사에 지급하면서도 국내 기부에는 인색한 모습을 보이는가하면, 국내 양산공장에서 생산하는 담배 제품에 국내산 담뱃잎을 사용하지 않고 있어 내수 경기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여기에다 지난해 만든 재고 담배를 담뱃세가 오른 올해에 팔아 수천억원에 달하는 이익을 챙겼음에도 사회 환원에는 소극적이어서 눈총을 받고 있다. 전 세계 180여개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계 필립모리스는 '말보로'를 비롯해 '팔리아멘트', '버지니아 S', '라크' 등의 담배 브랜드를 제조·판매하고 있다.
▶5년간 고작 매출의 0.048% 기부…배당은 무려 5100억여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필립모리스는 최근 5년간(2010~2014년) 총 3조106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세를 보이면서 다른 2곳(BAT코리아, JTI코리아)의 수입담배 업체 매출을 압도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 또한 매년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30%에 육박하며 KT&G에 이어 국내 2위 담배업체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상당히 인색한 행보를 펼치고 있다.
한국필립모리스의 매출액을 연도별로 보면 2010년 4895억원, 2011년 5790억원, 2012년 6449억원, 2013년 6898억원에 이어 지난해 7030억원으로 처음 7000억원 고지를 넘었다. 영업이익·순이익도 2010년 1332억원·940억원, 2011년 1535억원·1188억원, 2012년 1975억원·1570억원, 2013년 1840억원·1407억원, 2014년 1852억원·1432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같은 기간 배당 규모는 2011년을 제외하고 매년 순이익과 비슷했다. 배당이 있었던 연도의 배당성향은 76~111%를 나타내 대부분의 순이익이 외국 대주주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이 기간 총 배당액은 무려 5106억원에 이른다. 또한 로열티, 수수료, 용역비 등의 명목으로 매년 600억~800억원이 본사 등으로 지급됐다. 최근 5년간 총 3700억원이 보내졌다. 배당액과 수수료 등을 합하면 9000억원에 육박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과도한 수수료가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국부 유출'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반면 한국필립모리스의 기부 규모는 초라한 수준이다. 최근 5년간 한국필립모리스의 총 기부금은 15억원 정도다. 이는 총 매출액의 0.048% 수준이다. 총 영업이익(8534억원) 대비 또한 0.175%에 불과하다. 연도별 기부액을 보면 2010년, 2011년에는 없었다. 2012년 5억6062만원, 2013년 5억9949만원을 각각 기부했다가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했던 지난해는 오히려 3억4217만원으로 줄었다.
이와 관련, 한국필립모리스 관계자는 "배당액을 비롯해 로열티 등의 지급 수수료는 본사 정책에 따른 것"이라며 "2010년과 2011년에는 본사에서 직접 집행해 공시자료에는 잡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기부액은 예년과 같은 규모였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장학금 기탁,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쉼터 지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산 담뱃잎 사용 외면도 논란
한국필립모리스는 수입담배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에 생산공장을 갖고 있다. 한국필립모리스는 2002년 10월 양산시 유산동에 생산공장을 설립해 운영해오고 있다. 양산 공장은 연간 400억개비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다. 이곳에서 올해 생산되는 제품의 55%는 국내에 전량 공급하고 나머지 45%는 해외로 보낸다.
그런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원재료인 담뱃잎은 전량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다. 국산 담뱃잎을 수매하지 않아 내수 경기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국산 담뱃잎의 경우 다른 외국산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필립모리스 측이 외면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물론 기업의 경제 논리로는 가격이 최대한 저렴한 원재료를 확보, 사용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국내에서 약 3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업체가 국내산 담뱃잎 수매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져 보인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매년 국내에서 수백억원을 가져가는 외국기업치고는 한국 시장이나 한국 소비자에 대한 배려가 상당히 부족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한국필립모리스 관계자는 "국산 담뱃잎 사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담배농가 및 관련단체들과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최근 기획재정부는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JTI코리아 등 담배 판매업체 4사에 재고 차익에 대한 사회환원 계획에 속도를 낼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 재고 차익은 올초 담뱃값 인상에 앞서 출하한 담배를 인상 이후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세금차액을 말한다. 담배 4사의 재고 차익은 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KT&G를 제외한 판매업체들의 사회환원 계획은 지지부진하다.
KT&G는 약 33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해 향후 4년간 ▲소외계층 교육·복지 지원 ▲문화예술 지원 ▲글로벌 사회공헌 ▲소비자 권익 보호 등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재고 차익액은 업계 1위 KT&G가 3000억원, 필립모리스가 2000억원이며 BAT코리아와 JTI코리아의 합계가 1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