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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8000m급 14좌, 산수화로 담아낸 곽원주 화백

기사입력| 2014-02-25 17:17:37
히말라야 14좌 고봉을 산수화로 담아낸 곽원주 화백
<투어리즘 피플>

히말라야 8000m급 14봉우리를 화폭에 담아낸 화가가 있다. '산꾼화가'로 통하는 곽원주(64) 화백이 바로 그다. 곽 화백은 201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3년 동안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모두를 다녀와 화폭에 옮겼다. 그는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모두 오른 최초의 한국 화가이자, 히말라야 8000m급 14개 고봉을 한국화로 처음 담아낸 작가이다.

한국화가 곽원주는 평생을 오롯이 산과 그 풍광을 담아내는데 몰입해 온 인물이다. 2004년 백두대간을 완주하고 낙동정맥, 한남금북정맥, 한북정맥을 완주했다. 국내 1000여 곳의 명산을 섭렵하며 이를 화폭에 담아왔고, 중국의 태산, 항산 등 42개의 명산도 올랐다. 또 일본의 북알프스를 비롯한 10여 곳의 산자락도 찾아 화선지에 옮겨 '동양3국 명산전', '동양 삼국 명산 앙코르전' 등의 전시회도 가졌다.

곽 화백은 2011년 9월 첫 원정대를 꾸려 안나푸르나를 찾았다. 사실 히말라야에 오르기 전 까지는 히말라야가 동양 산수화에 과연 잘 어울릴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그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졌다. 발아래로 알록달록 야생화가 만발하고, 아스라이 먼 곳으로 짙은 녹음이 펼쳐진 히말라야. 산자락에는 완연한 가을빛깔이 내려 앉아있고, 산 정상은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등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 4계절 풍광이 한 눈에 펼쳐진 것이다.

곽원주 화백은 그간 동양 삼국의 산수화를 나름의 차이를 두고 담아 왔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중국의 산세는 먹의 농담으로 산의 형상을 표현한 발묵법을 택했다. 독특한 색채의 화산이 분포한 일본의 자연은 채색 산수화를 통해 담았다. 이 둘의 중간쯤의 특성을 지닌 우리 산하는 실경에 주자학적 자연관을 반영해 깊은 산세는 발묵법으로, 4계절의 화려함은 채색으로 표현했다.

이번 그가 화폭에 옮기는 히말라야 산수화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표현되는 그 나름의 관념성을 담아내고 있다.

곽원주 화백이 히말라야를 동양 산수화로 옮기게 된 계기는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과의 만남을 통해서다. 곽 화백의 작품 전시회를 찾은 강 회장이 히말라야 트레킹을 화폭에 담아볼 것을 권유 했던 것.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였어요. 산꾼 치고 히말라야에 가보고 싶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이를 화선지에 옮기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거든요. 산이 각지고 음영이 심한 히말라야는 동양화풍에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강 회장의 설득에 첫 원정대를 꾸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찾았다. 곽 화백은 이곳에서 히말라야가 동양 산수화에도 곧잘 어울리는 명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풍광에 압도돼 14좌 베이스캠프를 차례로 섭렵하게 되었다. 곽 화백은 히말라야를 전통 산수화 대신 현대적 실경 산수화로 담아냈다. 히말라야의 바람, 느낌, 풍경, 그리고 절대자의 오묘한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2011년부터 시작된 작업은 지난해 11월 18일 시샤팡마 까지 총 7차례의 트레킹으로 이어졌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8일을 필두로,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 13일, 에베레스트와 로체 베이스캠프 16일, 마나슬루 베이스캠프 16일, 칸첸중가와 마칼루 베이스캠프 45일, 낭가파르바트-가셔브룸 1·2봉-K2-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 36일, 초오유-시샤팡마 베이스캠프를 도는 데에는 22일이 걸렸다.

곽 화백은 "처음에는 히말라야에 대해 두려움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막상 가보니 한국의 지리산, 설악산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네팔쪽 고봉이 우리의 지리산자락 처럼 여성적이라면, 서편 파키스탄 발토르 빙하에 솟아오른 히말라야 산자락들은 한겨울 설악산을 빼닮아 강한 남성적 느낌을 들게 했다는 것. 특히 해발 4000~5000m의 트레킹 코스는 한국의 여러 둘레 길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그가 스케치하던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탈레반의 습격을 받아 여러 명이 숨지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고, 히말라야의 강력한 거머리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가장 힘들고 잊지 못할 트레킹은 2012년 10월의 칸첸중가-마칼루에 오를 때였다. 인천공항에서 네팔행 비행기가 이륙에 돌입하려는 찰나, 휴대폰 전원을 끄려 하는데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여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비행기에서 내릴 수도 없어 눈물을 쏟으며 그대로 네팔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네팔에서 인천행 비행기는 장례가 끝난 후에야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일정대로 45일간의 트레킹 길에 올랐다.

"참, 무슨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상황이 제게 벌어지더라고요. 비행기 속에서, 히말라야를 걸으며 어머니와 마음속의 대화를 실컷 했습니다. '사내자식이 가정사 때문에 가던 길을 돌아와서야 되겠느냐'는 말씀도 들려주시는 듯 했습니다. 어머니를 가슴에 묻고 벌인 작품 활동이라 더 각별했습니다."

곽원주 화백이 일련의 히말라야 트레킹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해맑은 표정이었다.

"히말라야를 가려면 세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답디다. 고지대를 걸을 수 있는 체력,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경제력, 그리고 30일의 여정을 소화할 시간이 허락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행복한 작품 활동을 하게 된 셈이지요. 특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을 작품에 담게 됐잖습니까."

전남 고흥 출생의 곽원주화백은 어린 시절 글과 그림에 재주가 많았다. 대학 시절 문학 동호회를 결성해 시화전을 주관하는 한편, 산악회를 조직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그림을 그렸다. 지금도 주말이면 '산예모'(산과 예술을 사랑하는 모임) 멤버들과 산행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공감을 나눈다.

곽 화백은 올해 야심찬 활동을 준비 중이다. 오는 9월 16일부터 3주 동안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히말라야 14좌 전시회를 갖는다. 이를 위해 가로 10m, 세로 2.5m에 이르는 대작 세 편도 완성중이다.

9월 히말라야 전시가 끝나면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로 향할 예정이다. 말띠 해를 맞아 아시아~아프리카~남미로 이어지는 긴 장정을 역동적으로 달리며 예술혼을 펼칠 계획이다.

김형우 여행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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