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에 접어든 이즈음 천년고도 경북 경주를 찾으면 무르익은 가을 정취 속에 풍성한 문화유산기행을 즐길 수 있다. 사진은 가을이 무르익은 경주 양동마을
늦가을 추위에 계절이 한결 맛깔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만추에 접어든 이즈음 천년고도 경북 경주를 찾으면 무르익은 가을 정취 속에 풍성한 문화유산기행을 즐길 수 있다. 봄벚꽃 피어나던 경주의 가로수는 알록달록 단풍낙엽을 흩날리고. 양동마을 초가지붕에는 조롱박이 탐스럽게 익어간다. 그 뿐인가? 천년 대찰 불국사, 석굴암을 비롯해 남산, 월성 등 경주 역사유적지구에도 가을빛이 내려 앉아 한층 그윽한 신라의 향기를 발산하는 중이다. 결실의 계절, 경주는 우리 역사 속의 친숙한 유적 탐방만으로도 가을걷이처럼 풍성한 문화유산기행을 꾸릴 수 있어 더 매력 있다. 글·사진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만추의 서정이 깃든 세계유산 '양동마을'
우리의 대표적 천년 고도 경주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다. 천년 대찰 불국사와 석굴암을 비롯해 경주의 남산, 월성, 감포 등 도시 곳곳에서 빛나는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그중 경주시 강동면에 자리한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은 옛 전통문화와 자연의 풍치를 잘 간직한 곳으로, 이즈음 느릿한 여유 속에 만추의 정취를 맛볼만한 여행지이다.
지난 500여 년 동안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가 터를 일구며 살았던 마을은 보통사람이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지세를 갖췄다.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 내린 능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남쪽에는 나지막한 성주봉이 자리하고 있다. 거기에 마을 앞으로는 양동천이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지형을 이룬다.
마을앞 개울을 경계로 동서로는 하촌과 상촌, 남북으로 남촌과 북촌 등 4개 영역으로 나뉜다. 이 같은 지형에 160여 호의 전통가옥이 자리하고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온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형적인 특성으로 인해 마을 바깥에서는 마을의 전체적인 규모나 가옥모습을 짐작하기 어렵다. 손씨와 이 씨의 양 가문은 각각 서로 다른 골짜기에 자신들의 종가와 서당, 정자 건물을 두고 있다. 신분의 차이에 따라 지형이 높은 곳에 양반가옥이 위치하고 낮은 곳에 외거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듯 자리하고 있다. 특히 200년이 넘는 고택만도 50호가 넘게 있어 마을은 우리 전통가옥의 구조를 살필 수 있는 커다란 고건축물 박물관에 다름없다. 양동마을을 여유를 두고 느릿하게 탐닉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동마을은 1993년 영국의 찰스황태자가 방문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기회를 맞았다. 이후 2010년 7월에는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마을에는 국보 1점(통감속편· 283호), 보물 4점(무첨당, 향단, 관가정, 손소영정), 서백당-수졸당-강학당 등 중요민속자료 12점,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7점 등이 있다.
◆불국사& 석굴암
신라는 불교문화가 번성한 나라였다. 이후 통일 신라 시대에 들어서 그 꽃을 피웠다. 백제와 고구려의 세련된 불교문화 유입 덕분이다. 8세기 중반에는 서라벌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토함산에 불국사와 석굴암이라는 기념비적인 걸작을 남겼다.
신라문화, 경주관광의 대표적 코스는 단연 불국사다. 불국사는 '이상적인 부처님의 나라'를 표방하는 사찰로, 국내에서 국보를 가장 많이 거느린 절집이다. 경내에는 다보탑과 석가탑(불국사 삼층 석탑), 청운교와 백운교 등 우수한 불교문화 유산들이 한 가득이다. 일주문-천왕문을 지나면 대석단이 나선다. 청운교, 백운교와 연화교, 칠보교로 이뤄진 멋진 석조 구조물이다. 11월이면 대석단 주변에는 화려한 단풍이 드리워져 운치를 더한다. 이들 다리를 지나 자하문을 통해 부처님의 세계로 향한다.
불국사 경내는 크게 대웅전, 극락전, 화엄경 구역으로 나뉜다. 그중 하이라이트가 대웅전 구역이다. 이곳에는 대웅전, 다보탑, 불국사 삼층 석탑, 좌경루와 범영루 등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자리하고 있다. 십 원짜리 동전에 등장했던 10.4m 높이의 다보탑은 정교하고도 수려한 자태가 압권이다. 석가탑(불국사 삼층 석탑)은 통일 신라 석탑의 표본이다. 수수함과 균형미, 안정감이 빼어난 석탑이다.
불국사가 자리한 토함산 위쪽 동해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는 석굴 사찰, 석굴암이 있다. 석굴암은 단순한 석굴사찰의 의미를 넘어 통일신라시대의 종교와 예술, 과학의 총화라고 부를 법하다. 불국사와 같은 시기 건축을 시작한 석굴암의 본래 이름은 '석불사'였다. 해외 여느 자연석굴과는 달리 화강암을 가공해서 만든 인공석굴이다. 석굴암은 크게 전실, 주실, 통로의 세 구역으로 나뉜다. 유리창과 연결된 앞쪽의 사각형 부분이 전실, 본존불이 모셔진 원형 부분이 주실, 전실과 주실을 이어 주는 곳이 통로다. 전실은 현실 세계를 표현한 예불의 공간이다. 석굴암의 중심은 부처의 세계를 나타내는 주실의 본존불이다. 본존불은 앉은키가 3.5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이다. 불상의 부드러운 곡선미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전하고 눈을 감고 엷은 미소를 띤 자비심 느껴지는 표정이 생불을 대하는 듯 하다.
◆경주 역사유적지구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모두 5개의 지구로 나뉜다. 신라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신라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 왕과 왕비, 귀족들의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릉원지구, 신라 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 등이다.
▶남산지구
경주 남산은 신라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곳이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난 나정이 남산 자락이고, 신라의 종말을 가져온 포석정 또한 남산에 자리하고 있다.
남산은 거대한 야외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신라인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서라벌의 진산격인 경주 남산은 예로부터 '절집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는 말이 따를 정도로 산사와 문화유적이 즐비한 문명의 공간이다. 왕릉이 13기, 절터가 147곳, 불상 118기, 탑이 96기 등 문화유적의 수가 모두 670여 개에 이른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유적이 산재한 노천 박물관은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남산답사의 기본은 삼릉계곡이다. 삼릉곡에서는 10기 이상의 대표적 부처와 유적을 만날 수 있다. 삼릉숲부터 본격 트레킹이 시작된다. 삼릉은 신라 왕릉 3기가 나란히 있는 곳으로 주변 솔숲이 압권이다. 삼릉계곡 답사의 하이라이트는 상선암이다. 비록 규모가 작지만 다리쉼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쉼터다. 상선암에는 남산의 불상 중 좌불로는 가장 큰 마애불상이 사찰 인근 바위에 새겨져 있다. 상선암 뒤 능선에 자리한 바둑바위는 경주 최고의 조망 포인트다. 멀리 무열왕릉, 대릉원, 반월성 등 경주의 주요 문화유적이 눈앞에 펼쳐진다.
봉화산 아래 용장골에는 조선 전기 매월당 김시습이 은둔하며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했던 용장사터가 있다. 용장골의 명물은 용장사지 석탑이다. 4.5m 높이의 삼층석탑이 기품 있다.
▶월성지구& 그밖에 유적
신라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月城)지구는 계림(사적 제19호), 신라왕궁의 별궁 터였던 임해전지(사적 제18호), 그리고 동양최고의 천문시설인 첨성대(국보 제31호) 등 다양한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경주 월성 산책로는 아름드리 솔숲을 거닐며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대릉원지구는 왕과 왕비, 귀족들의 고분군 지구이다. 황룡사지구에서는 황룡사지(사적 제246호)와 분황사 석탑이 보존되어 있다. 황룡사지에는 당시 화마에 그을린 주춧돌 등이 남아있어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산성지구는 왕경(王京) 방어시설의 핵심으로 수백 년 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명활산성(사적 제47호) 등이 있다.
◆여행 메모
▶가는 길=◇양동마을: 중부내륙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익산포항고속도로~영덕-경주 방면~강동IC~대구, 영천 방면~강동면 양동마을 /KTX(서울~신경주역 까지 2시간 10분), KTX신경주역에서 시내까지는 대중교통 이용.
<김형우 기자의 투어리즘 피플= 경상북도 관광국장 서원>
"안전한 경주로 놀러 오십시오"
-가을철 여행성수기인데. 경주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경주 시민들과 업계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쉬운 수준입니다. 지금이 연중 관광객이 가장 많을 때인데, 그렇지 못하거든요. 특히 수학여행단이 많이 몰리는 시즌인데, 이들의 발길이 끊겼습니다. 수학여행단이 주로 찾는 불국사 주변 유스호스텔은 예년 대비 90% 가량이 빠졌을 정도로 한산합니다.
-공무원 연수 등 단체 손님들이 많이 찾고 있는 분위기 아닙니까?
▶정부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상당부분 회복이 되고 있습니다. 보문단지 같은 경우는 단체 숙박이 60~70% 이상 회복되었습니다. 일반 가족단위 여행객들도 많이 늘고 있고 해외여행객들도 찾고요.
경주뿐만 아니라 우리 관광업계가 최근 2~3년 사이 시련이 컸습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에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연이어 터졌고, 올해는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내외국인을 고르게 유치하는 등 상당부분 회복기에 접어들었는데, 뜻밖에도 초가을(9월 12일)에 지진이라는 암초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수학여행단의 발길이 끊겼다는 것은 안전에 대한 불안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수학여행을 보내는 학부모님들의 걱정이 큰 건데요. 지금 경주는 문제가 없습니다. 지난 번 지진 후 국민안전처, 경상북도, 경주시, 경북관광공사가 합동으로 39개 다중 숙박시설에 대한 안전진단을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건물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경주를 찾으셔도 괜찮습니다.
-위기관리의 핵심은 신뢰라고 봅니다. 그래서 위기관리에서는 진실 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것이죠.
▶공감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를 공개하고 위기 대처에 나섰습니다. 피해상황도 고스란히 밝혔고요. 특히 요즘처럼 SNS가 발달된 시대에는 시민들이 먼저 피해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으니 사건 발생부터 진행-극복상황이 고스란히 노출 되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리고 극복해 나가는 중입니다.
-안전이 담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놀러 오라고 할 수는 없을 텐데요. 당장 경주 관광산업이 아쉽다고 해서 방문을 요청하는 것은 이기적인 태도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 방식을 본받을 만한데요. '지금은 놀러 오지 마라. 완전히 극복한 후에 부르겠다.' 신뢰를 부를 수 있는 이런 태도가 아쉬운 거죠.
▶그렇습니다. 그런 태도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때문에 우리도 지진이 나고 초기에는 피해점검, 문화재 점검이 우선이었고, 한 숨을 돌린 후에야 경주의 관광산업 피해를 돌볼 수 있었습니다. 맨 먼저 관광객들이 머무를 대형 숙박시설애 대한 안전을 체크했습니다. 국민안전처, 경상북도, 경주시가 합동으로 경주시 다중 숙박시설(39개)에 대한 안전진단을 1주일 동안 실시했던 거죠. 이후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은 10월 12일 이후에야 "경주가 안전하니 경주를 찾아 달라"고 경제 5단체 등을 돌며 호소를 시작했던 겁니다. 아무리 우리가 안전하다고 주장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잖습니까. 객관적인 검증 이후에 관광객을 부르는 게 순서지요.
-위기 대응 매뉴얼은 어떻게 가동하고 있습니까?
▶경상북도, 경주시, 업계가 함께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진 대비 안전 매뉴얼을 마련해 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안전 교육을 시켰습니다. 또한 숙박업소 등에는 지진 발생 시 대응 요령 등을 주지시키는 한편, 홍보물도 비치해 투숙객들이 요령을 익힐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숙박업소 TV의 초기화면에 지진발생 시 대응 요령 등을 주지시키는 프로그램도 상영할 예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상해서 지진관련 안전 매뉴얼 등을 업그레이드 시켜 나갈 방침입니다.
-이번 지진 상황이 과도하게 알려진 부분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게 한옥 기와가 쏟아져 깨진 기왓장이 많이 부각 되었다는 점입니다. 흔히 오래된 지붕의 기와는 접착력이 약해서 작은 충격에도 쏟아질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지붕위에서 땅바닥으로 쏟아지는 과정에서 쉽게 깨지기 마련이고요. 금번 경주지진에서도 황남동 기와집 밀집지역(5200채)의 기와 피해가 두드러졌습니다. 이를 영상으로 담다 보니 어지러운 지진피해 현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부각 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첨성대 관찰 CCTV 지지대가 심하게 흔들린 상태로 지진 당시 첨성대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첨성대가 심하게 흔들리는 듯 한 영상이 소개되어 문화재 피해가 심한 것으로 알려지게 된 것인데요.
그 정도였다면 첨성대가 전도 됐을 겁니다. 불국사 다보탑의 부러진 부분도 일제 때 접합 했던 부분의 이음새가 떨어진 것입니다. 물론 초유의 지진으로 경주시민들이 심리적 불안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요.
-중앙정부의 도움은 적절하게 받고 있습니까?
▶관광개발진흥기금 지원 범위에 펜션을 대상으로 편입하는 등 소규모 숙박시설까지 수혜범위를 확대 지원 해주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일본 구마모토 지진 당시 일본 정부는 숙박바우처 제도에 1900억 원을 쏟아 부으며 구마모토 회생에 도움을 줬는데, 우리도 좀 더 이 같은 실질적 지원이 아쉽습니다. 극복 지원을 넘어 부흥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지요.
-경주지역의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은 무엇입니까?
▶숙박료 할인, 무료입장 시행, 매력적인 콘텐츠 개발 등 다양한 방법들을 강구해서 적용시켜 나가고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인드라고 봅니다. 금번 경주 지진은 또 다른 기회입니다. 재난이 경주시민들의 마음을 다잡고 추스르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경주의 관광업계 분들을 비롯한 시민 모두가 이번 지진을 기회로 경주를 찾는 분들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을 겁니다. 과연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라는 경주 관광업계의 환대자세는 어떠했는지 반성해보는 한편, 명품 관광도시 경주를 일궈가는 데 힘을 모아갔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경상북도가 열심히 앞장서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도와주십시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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