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코오롱 인보사 사태, 이웅열 전 회장으로 불길 옮겨가나
기사입력| 2019-06-27 08:16:07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인보사 사태'가 결국에는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에게로 불길이 옮겨가고 있다.
지난달말 검찰이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당한 이 전 회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뒤 최근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는가하면, 개인투자자들도 이 전 회장을 '몸통'으로 보고 인보사 사태의 최종 책임을 지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은 지난해말 퇴임 후 코오롱그룹과 연락을 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 이 전 회장도 인보사의 세포가 바뀐 것을 인지하지 못한 피해자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어 향후 검찰 조사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형질전환(유전자 변형) 연골유래세포가 아닌 종양을 유발할 수도 있는 신장유래세포를 사용해 논란에 휩싸인 인보사는 코오롱티슈진이 개발하고, 코오롱생명과학이 판매하는 퇴행성관절염 유전자치료제로 지난 4월1일 세포 변경이 알려진 뒤 지난 5월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웅열 전 회장, 인보사로 법정에?
26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는 시민단체인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가 이웅열 전 회장을 인보사 개발 및 허가과정에서 책임 관련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로 고소·고발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코오롱티슈진이 2017년 3월경 위탁생산업체로부터 2액 세포가 연골유래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라는 결과를 받았고, 이를 코오롱생명과학과 이 전 회장이 인지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특히 인보사 개발을 주도한 이 전 회장이 개발과정에서의 문제를 몰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 전 회장이 인보사의 세포 변경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보고 지난 15일 이 전 회장을 상대로 인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출국금지 명령을 내렸다. 또한 검찰은 이 전 회장이 400억원대 퇴직금을 받고 돌연 사임한 시기가 미국 3상이 추진됐던 시점과 겹친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달초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 식약처 등을 잇달아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이 전 회장에 칼끝을 겨누기 시작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인보사가 이런 문제점이 있음에도 코오롱티슈진을 상장해 많은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긴 점에서 이 전 회장의 귀책여부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제일합동법률사무소가 지난달 27일 코오롱티슈진 주주 142명을 대리해 회사와 이 전 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데 따른 것이다. 검찰이 이 전 회장에 대해 적용한 구체적인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사기'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이 코오롱티슈진의 상장 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코오롱티슈진은 2017년 11월6일 코스닥에 상장했다. 이는 코오롱티슈진이 인보사의 세포 변경을 안 것으로 확인되는 2017년 3월보다 8개월이나 뒤다. 그럼에도 코오롱은 이 사실을 공개하는 대신 "세계 최초 골절관염 치료제로 한국과 미국에서 허가를 받을 것을 확신한다"는 내용으로 홍보하며 상장에 힘을 쏟았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재벌 정서상 총수가 힘을 실어주지 않았으면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 전 회장 외에도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 등 인보사 개발 및 코오롱티슈진 상장에 관여한 핵심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코오롱티슈진이 상장 후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이웅열 전 회장이나 코오롱티슈진 주식을 보유한 코오롱생명과학 등 계열사가 큰 수혜를 얻었기 때문. 예컨대 투자금 60억원 가량으로 코오롱티슈진 지분 17.83%을 보유하게 된 이 전 회장은 지난 4월1일 주가가 폭락하기 전인 3만5000원대로 따지면 평가차익이 700억원대에 이른다. 다만, 이 전 회장은 코오롱티슈진 주식을 팔지는 않아 실제로 차액을 얻지는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웅열 전 회장에 대한 소송은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법무법인 한우리 등은 코오롱티슈진에 손해배상을 낸데 이어 코오롱생명과학과 등기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등 이 전 회장으로 소송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은 퇴임 전까지 코오롱생명과학 등기이사였다.
이외에도 손해를 본 개인투자자를 모집해 이 전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내려는 움직임은 더 있다. 이들은 '네 번째 자식'이라는 등 인보사에 대해 공공연하게 홍보해온 이 전 회장의 과거 행보를 문제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오통티슈진·코오롱생명과학 온라인 주주게시판에는 이 전 회장을 성토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일부 성난 개인투자자들은 "사기에 가까운 것 아니냐"며 이 전 회장을 비난하며 소송 제기를 거론하고 있다.
코오롱티슈진의 주식을 1억5000만원 어치를 매입했다가 주가 폭락으로 1억원의 손해를 본 한 투자자는 "언론에 이웅열 전 회장이 인보사를 네 번째 자식으로 생각한다고 보도되면서 믿음이 가 투자했던 것"이라며 "인보사가 종양을 유발할 수 있는 신장유래 세포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주가가 폭락해 큰 손실을 보고 매도했는데, 인보사 개발과 판매를 주도한 이 전 회장이 책임을 져야하는 것 아니냐"고 소송의 뜻을 내비쳤다.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주변에서 코오롱티슈진으로 손해를 본 투자자를 모집해 이웅열 전 회장을 상대로 한 소송을 검토 중"이라며 "다만, 이 전 회장의 귀책사유 등 검찰 조사를 좀 더 지켜보고 난 뒤 실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오롱티슈진 소액주주는 지난 3월말 기준으로 5만9400여명이며 이들이 보유한 주식수는 451만6800여주(지분율 36.6%)에 달한다.
▶침묵하는 이웅열 전 회장도 피해자?
지난달 31일 인보사와 관련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조만간 이웅열 전 회장 등 관련자를 조사하기 위해 소환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에도 이 전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이유로 인보사 성분 변경과 관련해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이웅열 전 회장은 작년 퇴임 이후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며 인보사와 관련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이 전 회장이 지난 2014년 2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강당 붕괴 당시에 사고 발생 9시간 만에 현장을 찾아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 전 회장의 검찰 조사와 관련해서도 코오롱그룹은 "알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시민단체나 개인투자자들이 이 전 회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움직임 속에서도 일각에서는 이웅열 전 회장도 인보사 성분 변경에 대해 잘 몰랐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 전 회장의 긴 침묵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지난 19일 KBS 보도에 따르면 인보사 개발자인 이관희 전 코오롱티슈진 대표(전 인하대 의대 교수)는 인보사의 성분이 신장유래세포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한국 임상시험과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는 코오롱티슈진이 아닌 코오롱생명과학이 진행하기 때문에 자신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즉, 코오롱생명과학에는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신일고 동창인 이 전 회장과 함께 1999년 미국에 코오롱티슈진을 설립하고 인보사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가 코오롱생명과학에도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 전 회장도 인보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바이오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관희 박사가 KBS와 인터뷰한 내용을 볼 때 이웅열 전 회장도 정확하게 인보사에 대해 모르고 사업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는 이 전 회장도 피해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전 회장이 인보사 사태와 관련해 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본인도 피해자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추측했다.조완제 기자 jwj@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