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아버지가 지난 13일 대책위에 보낸 자필 편지. 사진제공=알바노조
국내 최대 편의점 CU(씨유)에서 일하던 한 아르바이트생의 죽음에 대해 CU 본사인 BGF리테일이 "책임이 없다"며 '나몰라라 식'의 대응을 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말 경북 경산의 CU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 A씨(35)가 비닐봉지값 20원 때문에 흥분한 취객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바 있다.
그러나 CU측은 사고발생 100일 넘도록 유족에게 연락조차 없었다. 지난달 유족과 시민단체에서 문제제기를 하자 그때서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홍석조 BGF리테일 회장의 직접적인 사과와 함께 적절한 보상 및 근무상 안전대책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CU측에서 "법적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면서 이번 사태의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다.
CU는 지난 2013년에도 점주들이 잇단 자살을 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자살한 점주의 사망진단서를 변조했다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BGF리테일은 1989년 보광 CVS사업부로 시작했지만, 지난해 말 홍석조 회장의 보광 지분 전량 매각으로 보광그룹에서 분리됐다. 편의점 사업이 그룹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BGF네트웍스, BGF휴먼넷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현재 홍 회장의 장남인 홍정국 전무(35)가 경영에 참여하며 후계 수업을 받고 있다.
▶ 아르바이트생 살해 관련 '뒷북 사과'·안일한 대처 논란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BGF리테일 본사 앞에서는 2013년 점주 자살 관련 집회 이후 4년 만에 '추모 촛불집회'가 다시 열렸다. 지난해 12월 14일 경북 경산의 CU편의점에서 살해당한 아르바이트생 A씨를 추모하고 CU측의 사과와 책임을 촉구하는 집회였다.
문제는 CU측의 태도였다. '경산CU편의점알바노동자살해사건 시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장례식은 물론 사건발생 100일이 지날 때까지 유족들은 BGF리테일 본사로부터 사과 한마디 들은 바가 없었다는 것. 유족이 콜센터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묵살당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BGF리테일 측은 "산재는 본사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해당 점포는 직영이 아니라서 본사는 법적으로 책임이 없다"면서 "회사 차원의 보상금은 논의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본사 차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장례식 당시 점주 대신 영업을 대신할 직원을 파견한 정도"라며 "경찰청과 함께 안전한 점포,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해 긴밀히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과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라고 했다. 결국 사건 발생 넉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편의점 직원들은 위험에 계속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이마저도 지난달 노동계 등 시민단체에서 본사측에 책임을 묻고 1인 시위를 시작하자, BGF리테일이 '뒷북 대처'에 나선 것이다. BGF리테일은 지난달 말 뒤늦게 '범죄 예방 및 안전사고 대처 요령'을 발표하고, 이달초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팝업 형식으로 올렸다.
그러나 이 또한 진정성이 결여된 무성의한 사과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책위의 최기원 알바노조 대변인은 "지난달 말 BGF리테일 실무자가 유족과 단 한번 만난 자리에서도 보상은 물론 사과문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사과문을 올린 후 문자메시지를 통해 일방적인 '사후 통보'를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CU측은 "유족들에게 홈페이지 사과문에 대해 사전 고지를 했다"면서, "유족들과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고 대책위 측과 엇갈린 주장을 폈다.
아직까지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이 계속돼, 유족들은 대책위에 관련 진행을 일임해놓은 상태다. 그러나 BGF리테일 측은 대책위를 배제하고 유족과의 직접 접촉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재발 방지 등 대기업의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유족에게 '경영권 침해에 가깝다'는 언급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BGF리테일의 이번 사건 처리를 보면, 지난 2013년 점주 자살 사건 당시 어이없었던 대처가 오버랩된다"면서 "4년이 지나도 변한 것이 없다"면서 혀를 찼다. CU는 당시 폐점 시기를 놓고 갈등을 빚다 자살한 점주의 사망진단서를 변조해 '사망 원인이 자살이 아니라 지병 때문'으로 오인할 수 있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가 이 사실이 들통나면서 박재구 당시 사장이 대국민사과를 한 바 있다. 그 때에도 시민단체의 추모 촛불집회에 대응해, 유족의 동의 없이 고인의 사망진단서를 공개하는 등 CU의 '꼼수 대처'가 도마에 올랐다. CU측은 지난 2013년 점주들의 자살 사건 당시 회사측의 보상이 어떻게 이루어졌냐는 질문에 "이번 사건과는 다르다"며 답변을 피했다.
▶ '초고속 성장'의 그늘…'돈은 본사가 벌고 위험은 알바가'?
이러한 아르바이트생의 죽음을 둔 공방이 더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편의점의 초고속 성장과 대비된 열악한 근로 환경 때문이다.
유통업계가 극심한 불황에 빠져있는 가운데, 편의점 업계는 1인 가구의 증가 등으로 탄탄한 성장을 이뤄가고 있다. 특히 CU는 지난해 업계 최초로 점포 1만호를 돌파해 화제를 모았다.
올해 취임 10주년을 맞는 홍석조 회장은 2007년 보광훼미리마트 시절 대표이사에 취임해, 3700여개에 불과했던 점포수를 1만여개로 만들어 '편의점 왕'으로 불린다. 특히 지난 2012년 훼미리마트에서 CU로 브랜드명을 바꿔 로열티 부담을 덜고, 지난 2014년에는 기업 공개에 성공해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BGF리테일은 매출 5조527억원, 영업이익 217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에 비해 각각 16.6%, 18.3%나 늘어난 수치다. 또한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말 홍석조 회장의 지분은 31.8%로, 기준 평가액은 지난해보다 3184억원(25%) 늘어난 1조6076억원에 이른다.
특히 BGF리테일의 배당총액은 지난해 297억원에서 올해 396억원으로 증가했고, 홍 회장은 지난해보다 23억원 가량 늘어난 126억원을 받게 된다. 이는 국내 개인 배당 순위 22위로,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다 높은 순위다.
일각에서는 이번 아르바이트생의 죽음을 '편의점 호황의 그늘'로 해석하기도 한다. 편의점 업계가 초고속 성장을 이뤄가는 동안 정작 가맹점주들과 종업원들은 그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 5년간 편의점주와 아르바이트생의 소득이 각각 12.5%와 44% 늘어난 반면 본사 수입은 200% 늘었다는 보고도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특히 편의점 노동자들이 연간 1500~2000건 정도의 폭력범죄에 노출돼 있다면서, 임시방편이 아닌 CCTV외에도 실질적 보완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책위의 '돈은 본사가 벌고 위험은 알바가 지나요?'라는 구호가 낯설지 않다"면서 "업계 수위를 다투는 BGF리테일의 실적만 챙기고 사회적 책임은 외면하는 태도는 '고객과 점주의 좋은 친구(Be Good Friends)'가 되겠다는 슬로건과는 거리가 멀다"고 꼬집었다.
한편 BGF리테일은 홍 회장의 장남인 홍정국 전무의 초고속 승진도 구설에 오른 바 있다. 2012년 만 서른의 나이로 입사한 홍 전무는 당시 입사하자마자 신설된 경영혁신실장을 맡았고, 2014년에는 상무로, 2015년 전무로 '급상승', 초단기 승진 기록을 썼다. 김소형기자 compac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