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반품 조치한 아모레퍼시치약 픽 제품들.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화장품 한류의 선두주자인 아모레퍼시픽의 치약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생활용품 전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가운데 매일 인체에 직접 접촉하는 치약에 이 성분이 포함된 것이 알려짐에 따라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사실을 제조업체나 관리당국조차 모르고 있었다면 점이다. 더불어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포함된 원료를 받아 사용한 곳이 아모레퍼시픽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처음 거론한 이정미 의원(정의당)에 따르면 애경산업·코리아나화장품 등 국내외 30개 업체가 문제의 원료를 받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6일 치약에 허용되지 않은 원료인 CMIT/MIT(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메칠이소치아졸리논)가 함유된 것으로 확인된 아모레퍼시픽의 '메디안 후레쉬 포레스트 치약' 등 11종을 회수키로 했다. 이번 조치는 해당업체가 허가(신고) 된 것과는 다르게 원료공급업체인 '미원상사'로부터 CMIT/MIT가 함유된 '소듐라우릴설페이트'를 공급받아 치약을 제조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취해졌다.
식약처 관계자는 27일 "미국은 CMIT/MIT를 치약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며, 유럽연합(EU)도 최대 15ppm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기준을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며 "이번 회수대상 11개 제품에는 CMIT/MIT가 0.0022∼0.0044ppm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양치한 후 입안을 물로 씻어내는 제품의 특성상 인체에 유해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해당 제품에 문제가 된 성분의 함량이 극히 적어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소비자들의 불신과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CMIT/MIT는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화학물질로 폐 섬유화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미국, 유럽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벤조산나트륨, 파라옥시벤조산메틸, 파라옥시벤조산프로필 등 3종만 치약 보존제로 허용하고 있다. 보존제는 방부제와 같은 것으로 제품의 변질을 막는 역할을 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치약 제품들의 경우 제조공정에서 CMIT/MIT를 직접 투입한 것이 아니라, 여러 원료 중 하나인 소듐라우릴설페이트의 보존제로 CMIT/MIT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CMIT/MIT 성분이 잔류하긴 하지만 그 함량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유해하지 않은데도 국내에서 사용을 금지한 이유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치약을 의약외품으로 관리하며 표준제조기준을 통해 꼭 필요한 보존제만 사용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해온 것이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치약 속 파라벤 함량 기준을 국제 수준(0.4%)보다 엄격한 0.2% 이하로 정할 정도로 치약에 대한 기준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해성분이라고 해도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사용했는지에 따라 인체 유해성 여부가 달라진다"며 "폐에 유해한 성분이지만 극히 미미한 함량에 호흡기 흡입이 아닌 구강제품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식약처는 아모레퍼시픽 치약 제품에 사용된 CMIT/MIT 성분에 대한 사용금지는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 아모레퍼시픽에 대해 3개월 제조 및 판매 금지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CMIT/MIT 성분이 포함된 원료를 납품한 미원상사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를 통해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지난 26일 아모레퍼시픽 치약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제기한 이정미 의원은 27일 국감에서도 아모레퍼시픽 치약의 인체 유해성 문제를 지적했다. 이 의원은 "CMIT/MIT는 식약처에서 치약용으로 사용금지한 물질이고, 2012년 환경부가 유독물로 지정했다"며 "이 물질로 인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도 95명(단독사용자 5명, 복수사용자 9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문제를 거론할 때까지 아모레퍼시픽은 물론 식약처조차 유해 물질이 포함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식약처의 '의약외품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생활화학용품 함유 유해화학물질 건강영향연구Ⅱ'(2015)에 따르면 가습기메이트의 원료인 CMIT/MIT가 변기 세정제나 페인트에 사용돼도 공기 중으로 노출된다. 이로 인해 알레르기성 피부염, 안면발진, 비염, 기침 및 호흡곤란 증세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정미 의원실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이 제조한 치약의 원료를 납품한 미원상사는 CMIT/MIT가 함유된 원료물질을 애경산업과 코리아나화장품, 코씰, 아이티산업 등 국내외 30개 업체에 납품했다. 문제의 원료가 사용된 품목도 치약과 구강청결제, 샴푸, 화장품 등 다양했다. 미원상사가 이들 업체에 납품한 연간 납품량은 3000t에 달한다. 미원상사는 CMIT/MIT 원료를 2012년까지 SK케미칼로부터 공급받았고, 현재는 다우케미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에 따르면 연간 치약 시장 규모는 약 2000억원으로 LG생활건강(41.2%)에 이어 아모레퍼시픽(25.6%)과 애경(17.8%) 순이다. 브랜드별 점유율은 LG생활건강의 페리오(27.9%)가 가장 높고 아모레퍼시픽의 메디안(20.1%)과 애경의 2080(17.8%), LG생활건강의 죽염(13.3%), 아모레퍼시픽의 송염(5.5%) 순이다. 문제가 된 메디안, 송염 브랜드는 국민 대부분이 한 번쯤 사용해봤을 정도로 대중적인 브랜드인 셈이다. 식약처는 향후 유사 사례가 있는 지 조사할 계획이라며 회수대상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는 해당 제품을 판매업체나 구입처에 반품(문의 아모레퍼시픽, 080-023-5454)하도록 알렸다. 가습기 살균제 속 문제 성분이 검출된 것과 관련해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은 지난 26일 식약처 발표 이후 해당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이미 구매한 고객에 대해 전액 환불 조치에 나섰다. 이규복 기자 kblee34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