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에서 이틀 연속으로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들어서만 5명의 근로자가 각종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에 특단의 조치가 나와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19일 오전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선실1공장 인근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현장. 사진출처=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홈페이지
경영악화를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에서 최근 연이틀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등 올 들어 5명이 산업재해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 취임이후 줄곧 '안전 경영'을 강조해왔던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의 리더십에도 상당한 손상이 가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직원 비리까지 터지면서 도덕적 해이와 관리·감독 시스템 부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직원들이 올해 초까지 협력업체와 공모해 자재를 납품한 것처럼 속여 돈을 빼돌린 것. 게다가 지난해 1조5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적자를 본 상태에서 지난 3월에는 세금 1200억원까지 추징당했다.
이처럼 현대중공업이 각종 위기에 직면하면서 재계 일각에서는 오너인 정몽준 전 의원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의 역할이 대폭 강화되거나 아예 정 전 의원이 직접 경영에 참여, 오너 경영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들어 5명 사망…"산재예방 시스템 실패"
지난 19일 오전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선실1공장 인근에서 50대 직원 A씨가 지게차에 치여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사망했다. 현대중공업과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이동하던 신호수와 지게차 사이로 지나가려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인 지난 18일에도 굴착기 조립 공장에서 사내하청업체 직원 B씨가 굴착기에 끼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지난 11일에도 도장공장에서 사다리차를 타고 일하던 근로자가 선박 블록 돌출부와 사다리차 작업대 사이에 끼여 숨졌다. 2월과 3월에 발생한 사망사고까지 합하면 올 들어 현대중공업에서 5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지난해 사망자 수 3명을 이미 넘어섰다.
현대중공업 노조와 시민단체들은 "회사가 안전관리에 더 중점을 두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재해"라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와 사내하청지회, 금속노조 울산지부,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등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하고 안전작업표준을 철저히 주지시켰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재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도 이날 "현대중공업의 산재사망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납기 단축과 원가절감을 위해 무리하게 작업을 서두르고, 위험한 업무는 하청 업체에 외주화하고 각종 산업안전 의무는 도외시한 결과"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연이은 사망사고에 현대중공업측은 "고용노동부, 경찰 등 관계기관과 협조해 사고 원인을 철저히 밝히겠다"며 "안전 조직 강화, 시설 개선, 협력사 안전관리·교육 등 쇄신을 통해 재해없는 작업장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1년간 산업재해로 근로자 7명이 사망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울산 동구 소재 현대중공업에 대해 4월 25일부터 5월 4일까지 8일간 안전보건 특별감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2014년 현대중공업에서 8명이 산재사고로 숨지자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현대중공업에 과태료 10억여원을 부과한 바 있다.
▶절체절명 상황에서 정몽준·정기선 부자의 역할은?
조선업 불황으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최근 비리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도덕적 해이와 관리·감독 시스템 부재가 드러난 것이다. 울산지검은 자재대금을 빼돌리고 비리를 저지른 현대중공업 전 직원 3명과 협력업체 대표 1명 등 4명을 지난 7일 구속 기소했다. 또 9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전 직원 C씨는 2008년부터 올해 초까지 협력업체 대표 4명 등과 공모해 자재를 납품한 것처럼 속여 25억원을 빼돌린 뒤 자신의 몫으로 8억5000만원을 챙긴 혐의다. 구속된 또 다른 전 직원 D씨는 C씨 및 협력사 대표 등과 공모해 8억6000만원을 챙겼다. 부장급 전 직원 E씨는 해외 업체로부터 운송계약 체결 청탁과 함께 대가로 2억8000만원을 받았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일부 직원이 재산을 다른 가족이나 친척 등의 명의로 돌리는 등 재산을 은닉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현대중공업이 자체 감사에서 적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현대중공업은 "문제를 일으킨 직원들은 모두 해고 조치했다"며 "앞으로 부정과 비리 행위를 근절해 깨끗한 기업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밖에도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조5401억원의 적자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에도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지난 3월에는 국세청으로부터 무려 1200억원의 세금 추징까지 받았다.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셈이다.
이처럼 현대중공업에 각종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정몽준 전 의원과 정 전 의원의 장남인 정기선 전무의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정 전 의원은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FIFA 윤리위원회로부터 자격 정지 6년 선고를 받으며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까지 지낸 정 전 의원은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떨어지고 정치권에서도 한 발 물러서 있는 상태다. 지난 18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무성 의원, 유승민 의원, 홍준표 경남지사, 남경필 경기지사에 이어 1.7%의 지지율로 여권에서 6위에 머물렀다.
이런 이유로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만약 정 전 의원이 경영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정 전무가 현대중공업의 위기극복 과정에서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오너십에 정통한 재계 한 관계자는 "조선업은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소문이 퍼지고 있는 등 업황이 최악이라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서는 (현대중공업의 회생이)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강력한 오너십으로 위기를 타개해야 할 상황이라 경험이 부족한 정기선 전무로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며 "오너인 정몽준 전 의원이 직접 나서야 할 중차대한 위기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정 전무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 및 인도와 협력사업을 주도하고 있으며 조선과 해양 영업을 통합하는 총괄부문장을 맡는 등 경영에 일정 부분 참여하고 있지만 전면에 나선 정도는 아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