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포스코 전 팀장의 청와대 투서 일파만파…권오준 회장 vs 황은연 사장 권력 암투설 진실은?
기사입력| 2016-04-19 09:05:59
'일촉즉발(一觸卽發), 사면초가(四面楚歌).'
포스코의 상황이 딱 이렇다. 국민 기업으로 불리며 한국경제를 책임졌던 것은 추억일 뿐이다. 지난해에는 1968년 창사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고, 철강경기 악화로 향후 경영환경도 녹록지 않다.
이 와중에 지난 2월초에는 대관(對官) 업무를 하던 정민우 전 포스코 ER(대외협력실) 팀장이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 황은연 포스코 사장의 권력 싸움으로 포스코가 망가지고 있다고 경영진을 비판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 전 팀장은 "무능한 권오준 회장과 정치색이 강한 황은연 사장이 포스코를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준양 전 회장의 검찰 수사와 실적 부진으로 신음하는 포스코가 경영쇄신에 나서도 모자란 상황에서 각종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재계 일각에선 1년도 채 임기가 남지 않은 권 회장이 '식물 회장'에 빠질 가능성도 나온다.
▶권오준·황은연 관련 청와대 투서, 포스코 흔드는 뇌관?
포스코는 정민우 전 팀장이 현직 경영진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즉각 대응했다. 포스코는 정 전 팀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면직 처분을 내렸다. 지난 2월 15일에는 서울 수서경찰서 고소장을 제출했다. 재직 시절 알게 된 인적 네트워크와 정보를 활용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경영진을 음해해 회사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다는 게 이유였다.
정 전 팀장은 이후 국회와 검찰청, 경찰서, 언론사 등을 옮겨 다니며 한 달 넘게 1인 시위를 벌였다. 권 회장과 황 사장의 비리 의혹을 담은 투서를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포스코 사내외 이사들에게 수차례 보내기도 했다.
투서의 내용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대관 업무의 특성상 회사 차원에서 민감한 내용이 언급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권 회장과 황 사장 등 경영진의 비리 의혹이 담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아 업계 안팎에선 투서가 향후 포스코를 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기업 한 대관 업무 관계자는 "각 기업에는 대관팀이 있고, 이 팀은 정부 부처나 국회를 상대로 기업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부서"라며 "마음먹고 투서를 하기 시작했다면 회사와 경영진 관련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부서 출신인 만큼 경영진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아 내용이 공개될 경우 포스코가 위기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전 팀장은 경영진의 권력다툼이 포스코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포스코를 바로잡기 위해선 경영진의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 전 팀장의 투서 내용에 경영진의 비리의혹과 경영능력에 관련된 것이 주를 이루고 있을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 정 전 팀장은 지난 2월 이뤄진 포스코의 임원인사와 관련해 "권 회장이 정치권의 주문대로 인사를 실시해야 했고 정치권 실세의 배후에 황 사장이 있다"며 "결국 권 회장이 황 사장의 뜻대로 인사를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권 회장과 황 사장이 최근 실시된 임원인사 이전까지 자리보전을 위한 동맹관계를 형성해 왔으나 최근 황 사장이 포스코 회장에 욕심을 내면서 서로를 견제하며 적대적 대립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황 사장은 정치성향이 강한 인물로 차기 포스코 회장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얘기가 회사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며 "정치권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본업에 충실한 사람들이 포스코 경영을 이끌어야 포스코의 회생이 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 전 팀장이 포스코의 문제로 지목하는 것은 경영진의 경영능력이다. 포스코는 최근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정준양 전 회장이 벌려놓은 인수·합병(M&A)의 후유증을 톡톡히 앓았다. 회사 신용등급이 떨어졌고, 주가는 최근 6년간 50% 이상 하락했다. 지난 1월 16만원선까지 떨어졌다가 철강 시황 회복으로 최근 25만원까지 반등한 포스코 주가는 2010년 1월에는 60만원을 넘나들었다.
2014년 3월 취임한 권 회장은 경영 환경 개선을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철강 본연의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포스코특수강과 포스화인, 포스타워 등 30개가 넘는 계열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전병일 전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 대표가 미얀마 가스전 매각에 반발하며 항명 소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포스코는 올해도 30개 이상의 회사를 추가로 정리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권오준표' 구조조정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지난해 말에는 포스코 사상 처음으로 96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이유로 권 회장의 경영능력을 두고 설왕설래가 끊이질 않고 있다.
현 경영진의 경영능력의 발목을 잡는 사례는 또 있다. 포스코는 2014년 8월 포스파워(전 동양파워)를 인수했다. 포스파워는 2013년 삼척 화력발전소 사업자로 선정된 업체다. 포스코는 올해 초부터 착공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4조원 규모의 사업비를 마련하지 못하면서 애를 먹고 있다. 지분 매각을 통해 사업비 분담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회사 인수를 주도한 경영진의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포스코플랜텍도 마찬가지다. 포스코플랜텍은 2011년부터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권 회장은 지난해 이사회 반대에도 포스코플랜텍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2014년 각각 700억원과 2900억원을 출자했지만 경영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2015년 한 해에만 1272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포스코플랜텍은 부채 총액이 7227억원으로 자본총액(6050억원)을 넘어서면서 결국 최근 상장 폐지됐다.
▶1년 채 임기 안 남은 권오준 회장, '식물 회장'?
포스코는 지난 3월 11일 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만료된 윤동준 포스코에너지 대표의 뒤를 이을 신임 등기이사로 재무최고책임자(CFO)인 최정우 부사장을 임명했다. 지난 2월 1일 사장으로 승진하며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될 것으로 유력하게 점쳐졌던 황은연 사장이 탈락한 것. 현재 포스코의 등기 사내이사는 5명이다. 이날 선임된 최정우 부사장을 비롯해 권오준 대표이사 회장, 김진일 대표이사 사장(철강생산본부장), 오인환 부사장(철강사업본부장), 이영훈 포스코켐텍 대표 등이다. 이를 두고 권오준 회장이 황 사장과의 권력싸움에서 이긴 것으로 보는 관측이 있기는 하다. 이와 관련, 포스코 관계자는 "권오준 회장이 좀 더 구조조정이 필요해서 CFO를 이사후보로 추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권 회장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아, 승부는 기울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권 회장의 레임덕이 급속하게 찾아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10대 그룹 대관 담당 임원은 "포스코는 정치바람을 타는 곳인데, 정치권과 연이 없는 연구원 출신 권오준 회장이 연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연임 가능성이 사라지면 레임덕은 급속하게 올 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한편 포스코 측은 정 전 팀장의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한 편의 소설과 같다는 게 포스코 관계자의 설명이다. 투서의 내용도 추측성 내용일 뿐 사실은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정 전 팀장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유포하고 있어 경찰에 신고했다"며 "(정 전 팀장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적자의 경우 철강 뿐 아니라 국내 경제 전반에 불황기였기 때문으로 지난해는 좋은 곳이 없었다"며 "정 전 팀장이 주장하는 내용은 실체가 없는 소설에 가깝고, 경찰에 고소한 만큼 조사 결과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