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페인트업계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이자 1960년 문을 연 뒤 50년 넘게 사업을 영위해온 현대페인트가 끝 모를 경영권 분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재 현대페인트 노동조합은 회사를 점거하고 집회 등을 통해 전·현직 대표가 무자본 인수·합병(M&A)을 시도한 투기자본이라며 회사의 '상장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현 경영진의 직무정지를 신청한 전 경영진은 경영권 회수를, 현 경영진들은 전 경영진으로부터의 경영권 사수를 놓고 힘겨루기 중이다.
이처럼 진흙탕 싸움을 벌이던 현대페인트의 경영권 다툼에서 법원이 최근 전 경영진의 손을 들어주며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전 경영진에 제기한 현 경영진의 직무집행정지를 법원이 받아들인 것. 1년 사이 6번 경영진이 바뀌며 상장폐지 목소리까지 나오는 현대페인트의 경영권 분쟁이 주주들의 바람처럼 일단락되고 정상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법적 다툼 승자는 전 경영진?
경영권 분쟁은 지난해 11월 최대주주인 이안 전 대표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며 시작됐다. 이 전 대표가 보유주식 전량(49.94%)을 시세조종을 통해 처분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회사 경영권에 공백이 생겼다. 17일 현재 현대페인트의 최대주주는 법정관리 당시의 회생채권을 출자전환한 토마토2저축은행(8.02%)이다. 이에 저마다 경영권을 갖겠다고 나서면서 6차례나 경영진이 바뀐 것.
특히 지난 1월 4일 경영권을 빼앗긴 김준남·김동하 전 대표집행위원은 즉시 법원에 지위보전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등 현 경영진인 최윤석·박현우 현 대표집행위원과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등기 이사와 노조 집행진도 지난해 12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경영권 다툼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19일 서울중앙지검에 김준남·김동하 전 대표와 최윤석 현 대표 등 5명을 배임·횡령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나상대 노조 위원장은 "최윤석·박현우 현 대표나 김준남·김동하 전 대표들 모두 투기자본"이라며 "사채시장과 각종 채널을 동원해 조사한 결과, 자금동원 능력이 없는 세력"이라고 밝혔다. 그는 "몇 개월 사이에 6차례 이상 경영진이 바뀌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단독 또는 공동 대표를 맡았던 인물들 모두가 구속된 이안 전 대표와 관련된 친인척이나 지인 등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회사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현 경영진은 이에 대해 "투자자 확보를 위해 유상증자 등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는데 임직원들은 현 경영진이 유치한 자본을 모두 투기자본으로 몰고 있다"며 "현재는 상장폐지를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항변했다. 전 경영진 측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한결도 "전·현직 대표들의 공과가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현대페인트지회가 양측 모두를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며 "여기에 더해 상장폐지까지 요구하는 것은 주주의 재산과 권리를 침해하는 위험천만한 부정행위"라고 밝혔다. 노조는 지난해 12월 한국거래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현대페인트의 상장폐지를 청원한바 있다. 현 상황에서 상장폐지는 불가피한 요건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경영권을 빼앗긴 김준남·김동하 전 대표는 노조에 맞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노조 집행부와 비등기 이사 등이 만든 가칭 비상대책위원회가 경영 정상화를 저해하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며 인천지검과 서울 남부지검에 각각 처벌 등을 촉구한 상태다. 게다가 지난 1월 6일 법정대리인을 통해 채권자 자격으로 대표집행임원 임시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신청을 인천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전 경영진은 최윤석·박현우 현 대표집행임원은 투자할 자금이 전혀 없으면서도 사외이사 및 노동조합 등과 결탁해 거짓으로 증자 약속을 한 뒤 지난 1월 4일과 18일에 각각 개최된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이사회에서 대표가 됐고, 이후 사채업자들로부터 자금을 차입해 유상증자에 투입하려 한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은 지난 11일 이를 받아들여 가처분결정을 내렸다. 전 경영진은 대표집행임원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법적 다툼의 승자가 된 셈이다.
▶끝없는 분쟁, 투명경영이 정상화 관건
법정 관리 이후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현대페인트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2007년까지 연 매출 450억원을 꾸준히 올리던 현대페인트는 2014년 매출이 239억원까지 꺾였다. 영업손실은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21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승기를 잡은 전 경영진은 자신들이 짜 놓은 계획대로 정상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결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따라 대표집행임원의 지위를 회복한 전 경영진들이 종전에 계획했던 전환사채 발행과 제3자 유상증자 등을 예정대로 진행해 시급히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전 경영진은 본인자금 없이 사적 이익을 위해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것은 현 경영진 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 측은 또 다르다. 이들은 경영권 분쟁의 핵심은 이사회라고 강조한다. 이사회가 올바른 결정을 하지 못함으로써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며, 소액주주와 종업원 등 관련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투기자본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경영진 뿐만 아니라 현 경영진과 계속 일하고 있는 이태일 현대페인트 부사장 겸 이사회 의장은 다른 입장이다. 이 부사장은 지난 한 해 동안 열린 모든 이사회가 의장인 자신도 모르게 진행됐다며 17일 오전에 열린 이사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 부사장은 "비등기 이사와 노조 집행부가 주축이 돼 지난해 12월 결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적법하지 않은 임의단체"라며 "이들이 주장하는 투기자본이란 자신들과 논의하지 않은 모든 투자금과 투자자를 지칭하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속칭 비대위라는 이들의 반대로 현재 회사에 현금이 전혀 유입되지 않아 페인트 사업은 물론 지난해 8월 부산항에 문을 연 면세점마저 위태롭다"며 "이대로라면 오는 3월쯤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이는 외부 회계감사의 결과는 '의견거절'이라는 답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현직 경영진 간의 분쟁은 법원의 최근 판결로 일단 전 경영진의 판정승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전 경영진이 이 여세를 몰아 경영권을 완전히 되찾기 위해서는 노조의 벽을 넘어야 한다.
전 경영진들이 투기세력이라는 의혹을 불식시키고 정상적인 투자금을 유치하는 등 투명경영을 할 수 있을 지, 노조와의 반목과 갈등을 씻고 경영 정상화를 위한 노사화합을 이루어낼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이규복 기자 kblee34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