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대한항공, 퇴사 조종사들과 법정 공방…'노예계약' 논란 확산
기사입력| 2015-08-21 09:22:01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대한항공이 이번엔 '노예계약' 논란에 휩싸였다. 대한항공 퇴직 조종사들이 입사 전 받은 교육의 훈련비를 대한항공에 지급하는 계약이 노약 계약이라며 이를 반환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 대한항공은 '땅콩 회항'때의 피해자인 박창진 사무장과 승무원 김도희씨가 조 전 부사장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 최근 줄소송을 당하고 있다.
다.
20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에 따르면, 대한항공에서 각각 6년여간 근무한 뒤 퇴사한 조종사 김모씨 등 3명이 지난 4월 대한항공을 상대로 총 1억9000여만원의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서울 남부지법에 냈다. 1억9000여만원은 이 조종사들이 부담한 비행교육비 가운데 일부다.
이번 소송과 관련, 재판부는 25일 조정기일을 잡았으나 대한항공이 "재판을 통해 판결을 받겠다"며 불출석 의사를 밝힘에 따라 본격적인 재판이 진행된다. "해당 사건은 대한항공 전체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건이며 이후 훈련비 관련 소송의 선례가 될 수 있다"며 대항한공은 조정 거부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번 소송은 비행교육 훈련계약에서 시작된다. 대한항공은 신입 조종사를 채용할 때 입사 2년 전에 비행교육훈련 계약을 체결하는데, 1억원에 달하는 초등교육비는 자비로 해결하고 제주도에서 하는 약 1억7000만원의 고등교육 훈련비를 대한항공이 대납하도록 했다. 그리고 10년간 근속하면 이 훈련비에 대해 상환의무를 면제해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 대여금 면제비율은 근속 1년차∼3년차까지 연간 5%씩이며, 4년차∼6년차는 연간 7%로 정했다. 7년차∼10년차 연간 16%에 달한다.
그런데 조종사가 10년 근속 기간을 채우지 못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대한항공 규정에 따르면 퇴사 조종사는 훈련비를 한꺼번에 갚아야 한다. 이번에 소송을 낸 조종사 김모씨 등의 경우, 2004년 또는 2005년 대한항공과 비행교육훈련 계약을 체결한 뒤 2년간 무임금 상태로 교육을 마쳤다. 그리고 대한항공에 입사해 6년여간 근무하다 2013년, 2014년에 퇴사했다.
대한항공은 이들이 계약 당시 약속한 10년 근속을 못 채운 데 따른 미상환 고등교육비로 각각 9300여만원, 8500여만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김씨 등은 "대한항공은 대기업으로서 충분히 근로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할 여력이 있는데 교육비를 임의로 정해 근로자에게 모두 부담하도록 하는 관행은 문제가 있다"며 "더욱이 10년간 근속하지 않으면 교육비를 일시에 토해 내도록 하며 2인의 보증인까지 내세우게 하는 것은 노예계약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씨 등은 고등교육비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20조다. 아울러 이들은 대한항공의 교육료나 면제 금액에 대한 판단기준 또한 정확하지 않다는 점 또한 문제로 지적했다. 예를 들어 대한항공은 교육 과정 중 시뮬레이터(FFS) 사용료를 시간당 500달러, 575달러로 산정한 반면, 국내 다른 항공사들은 시간당 420달러나 350달러로 책정한다는 것이다.
이번 소송은 3명이 시작했으나 대한항공 퇴직 조종사들의 합류가 이어지고 있다. 원고는 현재 7명으로 늘어났으며,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또한 노조 차원에서 이번 소송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노예계약 논란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노예계약은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교육훈련 계약은 면허가 없는 사람이 첫 교육 단계부터 시작해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줬던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퇴직 조종사들은 입사 당시 관련 내용을 알고 계약했다"고 밝혔다. 이어 "비행 경험이 전무한 일반 지원자들에게 교육을 받고 여기에 발생되는 고가의 교육비를 근속하면 변제해주는 일종의 혜택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일 '땅콩 회항' 사건 피해자인 승무원 김도희씨 소송에 이어 박창진 사무장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도 각하해달라는 내용의 서면(motion to dismiss)을 미국 법원에 제출했다. 박 사무장은 지난달 24일 "조 전 부사장이 기내에서 반복적으로 욕설하고 폭행해 공황장애 등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미국 뉴욕주 퀸스카운티 법원에 조 전 부사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조 전 부사장의 변호인은 이날 서면을 통해 손해배상 소송을 미국에서 진행하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하고 훨씬 편리한 한국 법정이 있기에 '불편한 법정의 원칙'에 따라 각하해달라고 요청했다. 사건 당사자가 모두 한국인이고, 관련 자료와 증거 또한 모두 한국어로 작성됐기에 한국 법원에서 재판받는 게 마땅하다는 논리다. 전상희 기자 nowa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