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삼성물산, 미국 헤지펀드 공격 받아…'소버린 분쟁' 재연될까
기사입력| 2015-06-04 15:04:23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계획에 반대의사를 피력해 경영권 분쟁까지 확대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2003년 역시 헤지펀드 성격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의 최대주주로 부상하면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퇴진 등을 요구해 법정공방까지 벌이는 등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4일 재계 등에 따르면 삼성물산 지분 4.95%를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지난 3일 2.17%를 추가로 장내에서 매수, 7.12%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이날 '경영 참가 목적'으로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이 회사는 별도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 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1대 0.35다. 이같은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하다는 주장이다. 1977년 설립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엘리엇어소시에이츠와 엘리엇인터내셔널 두 펀드를 운용하고 있으며 전체 운용 자산은 260억달러(약 29조원)에 달한다.
제일모직과 달리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분이 19%대에 그치는 상황이다. 지난 3일 기준으로 외국인 지분은 32.11%에 달한다. 국민연금도 9.79%의 지분을 들고 있다. 따라서 엘리엇매니지먼트를 비롯한 외국인·기관 주주들이 1조5000억원 규모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합병 계획이 무산될 수 있다. 이는 삼성물산 보통주 지분 약 17%에 해당하는 규모다. 다만, 합병 계획이 좌초했을 때 주가 측면에서 반대한 주주들이 볼 수 있는 이익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합병 반대 세력의 결집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이처럼 외국계 기관투자가가 국내 재벌 대기업에 대해 지분 대량 취득의 방식으로 직접적인 공격에 나선 것은 2000년대 들어 심심치 않게 발생해왔다. 예컨대 소버린을 비롯, 2004년 영국계 펀드인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공격, 미국의 큰 손인 칼 아이칸의 KT&G의 기업인수·합병(M&A) 시도 등으로 심각한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재계 관계자는 "엘리엇의 삼성물산 공격은 소버린을 떠올리게 한다"면서도 "그러나 삼성물산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 아니기에 SK그룹과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듯 하다"고 예상했다. 송진현 기자 jhso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