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경기불황 속 소비양극화 심화…외환위기 때와 비슷
기사입력| 2015-04-08 14:42:33
경기불황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소비의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중·하위 계층에선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반면, 상류층의 고액 자산가들은 5만원대 디저트를 즐기는 등 그들만의 '귀족 소비'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
이희숙 충북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불황이라지만 지속적으로 외제차를 비롯한 고가 제품 소비가 늘고 있다. 이는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이 양극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분석했다. 지난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전반적인 경제 상황과는 상관없이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골프채 등 사치품 수요가 늘었는데 지금이 그때와 사정이 비슷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대형 할인마트, 매출감소로 울상
중산층의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이들이 주로 이용해 온 대형 할인마트들이 타격을 입고 있다. 롯데마트의 올 1분기(1~3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 줄었다. 의류 부문 감소율은 8%에 이를 정도다.
홈플러스 역시 1분기 매출이 마이너스(-0.9%)를 기록했고 업계 1위 이마트도 불과 0.8% 성장하는데 머물렀다.
3월만 놓고 보면 소비 위축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이마트의 패션 부문 매출은 작년 동기대비 11.2% 감소했고 양곡(-10.8%), 수산물(-8.7%), 가공식품(-3.2%)도 줄줄이 뒷걸음질 쳤다.
변지현 롯데마트 마케팅전략팀장은 "대표 생필품인 우유는 가격을 크게 낮춰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쳐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면서 "특히 수입 향신료나 이색 채소류 등 고급 품목보다 일반 생필품의 매출 부진이 더 두드러진다"고 중·하위 계층의 위축된 소비심리를 전했다.
▶명품소비 늘리는 상류층
반면 상류층이 선호하는 상품들은 불황을 모르고 있다. 오히려 매출이 신장세여서 대조를 보인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의 올해 1분기 명품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8~15% 증가했다, 이 기간 백화점 전체 매출은 제자리걸음을 했으나 명품 매출은 날개를 단 것.
명품류의 호황은 이른바 백화점 VIP(최우수고객)들의 소비가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관 파크제이드 등급(연 2000만 원 이상 구매) 고객의 작년 1~11월 평균 구매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1%나 늘었다. VIP보다 한 단계 높은 VVIP급의 지출 증가율도 두 자릿수로 조사됐다. 롯데백화점 최상위 고객(연 1억원이상 구매)의 작년 1~10월 구매액은 전년보다 14.1% 증가했다. 전체 고객 구매액 증가율(4.4%)의 3배를 웃돈다.
지난 2~3월 서울시내 특급 호텔들이 선보인 '딸기 디저트 뷔페'의 인기에서도 고소득층의 소비행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딸기로 만든 수 십 가지의 고급 디저트를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이들 뷔페 가격은 4만~5만원대(성인기준)로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하지만 2~3주 이후 예약이 가능할 정도로 고소득층 손님이 몰려들었다.
커피도 고급·프리미엄 제품인 '스페셜티 커피' 수요만 급증하고 있는 형국이다. 서울 소공동 소재 고급커피 전문매장 '스타벅스 리저브'는 상위 7%내 프리미엄급 원두만 사용해 6000~1만 2000원에 이르는 고가 커피를 내놓는데 근래 하루 평균 판매량이 작년 3월 개장 초기(30여 잔)의 두 배로 늘었다.
▶'귀족 마케팅'에 열 올리는 유통업계
최근 발표된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한국의 개인소득 분포: 소득세 자료에 의한 접근' 논문을 보면 2010년 기준 20세 이상 성인인구 3797만명 가운데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8.05%를 차지하는 것으로 돼 있다, 상위 1%와 0.1%의 소득 점유율만 따져도 12.97%, 4.46%에 이른다.
또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2011~2012년 사이 소득 하위 20%의 자산이 5만원(1493만원→1498만원) 증가할 때 소득 상위 1%의 자산은 무려 3억9000만원(39억6009만원→43억4932만원) 늘어났다.
이처럼 소득과 자산 격차가 커지자 유통업체들은 고소득층에 마케팅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소비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 VIP를 대상으로 '신년 해맞이 기차여행' 이벤트를 진행했다. 본점·잠실점·영등포점 등 8개 지점 우수고객(구매액 등 기준) 중 참가 희망자 600여 명을 초청해 동해 망상해수욕장에서 첫 해돋이를 보는 것으로 올해 첫 공식 마케팅 활동을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경기불황이 지속되고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유통업계의 이같은 '귀족 마케팅'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송진현 기자 jhso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