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조완제의 재계 인사이트] 포스코 비자금 사태로 권오준 회장 사퇴까지 가나
기사입력| 2015-04-02 16:49:35
'포스코 비자금'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정준양 전 회장은 물론이고, 현 회장인 권오준 회장에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사정(司正) 칼날이 제일 먼저 들이닥친 포스코는 포스코건설 압수수색과 함께 정준양 전 회장 등 전 최고 경영진의 줄소환이 예상되고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전 경영진의 구속까지 갈 사안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비자금 사건에 한 발 비껴서 있던 권오준 회장이다. 권 회장은 청와대나 사정당국으로부터 지난해 7월 확인된 비자금 건을 그동안 '은폐'해 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정·재계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권 회장이 사퇴까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준양 전 회장, '포스코 비자금' 사건의 몸통?
지난 3월 13일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인천 송도의 포스코건설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바로 전날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비자금 의혹 등 과거정권 부정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직후다. 정·재계가 술렁거린 것은 당연. "올 것이 왔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의혹은 지난 2월 처음 언론에 보도됐지만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소문으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경 황태현 포스코건설 사장은 부임한 직후 국내외 건설현장에 대한 내부 감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법인장을 지냈던 임원 A씨와 B씨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베트남 현장 직원들과 공모해 300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만들어 관리하고, 이 가운데 100억원을 횡령한 정황을 확인했다는 소문이 포스코 안팎으로 유포되기 시작한 것. 이 정보를 입수한 검찰이 이를 자세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수사에 착수한 것. 이미 검찰은 작년에 상당 수준의 조사를 끝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의혹 수준을 뛰어넘는 단서나 증거를 확보했다는 얘기다.
이 뿐만이 아니다. 포스코는 인도네시아에서도 100억원대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이 비자금 가운데 일부가 포스코 전 최고 경영진에 전달된 정황을 검찰이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지난 3월 27일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은 당시 최고위층인 정준양 전 회장과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정 전 부회장은 정 전 회장의 오른팔 격으로 지난해 3월 포스코에서 물러난 정 전 회장과 퇴임시기도 같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석현 의원이 정 전 회장이 포스코 회장으로 임명될 때 포스코건설 부사장으로 있던 정 전 부회장이 정치권과의 가교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할 정도의 관계다.
▶권오준 현 회장, 비자금 사건으로 '식물 회장'?
이처럼 검찰이 '포스코 비자금' 수사에 본격 착수하면서 권 회장은 사실상 '식물 회장'이 된 상태다. 가뜩이나 지난해부터 회장직 연임 뜻이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리더십에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전방위적인 사정까지 받아 권오준 회장은 운신의 폭이 거의 없어진 상태다.
뿐만 아니라 이에 앞서 권 회장은 지난해 12월 부실계열사로 정리할 것으로 유력시되던 포스코플랜텍에 오히려 2900억원이나 지원하는 결정적인 악수(惡手)를 뒀다. 포스코플랜텍은 지난 2008년 이후 2010년 179억원의 순이익을 냈을 뿐, 이후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공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무려 2796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런 기업을 정리하기는커녕 유상증자를 통해 추가적인 자금을 투입한 것. 게다가 성진지오텍을 인수·합병(M&A)한 뒤 사명을 변경한 포스코플랜텍은 이번 검찰 수사선상에도 올라있다. 고가 매입 등 M&A 과정에서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것. 때문에 권 회장이 정 전 회장의 의혹거리를 감추기 위해 내부 실사(實査)가 필요한 매각보다는 회생 쪽에 무게를 뒀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검찰 수사로 권 회장과 전 최고 경영진간의 직·간접적인 연결이 추가적으로 밝혀질 경우 권 회장의 리더십은 더욱 추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방위산업체의 한 중견간부는 "오너가 없는 포스코의 특성상 정치 바람을 타는 데다, 정부의 사정이 워낙 거세 권오준 회장의 리더십이 엄청나게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영위하는 업종과 관련 있는 중견기업의 한 고위 임원은 "권오준 회장은 엔지니어 출신이어서 선임될 때부터 글로벌 철강기업인 포스코의 CEO를 맡기에는 힘에 부친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그랬는데, 정부의 사정 바람까지 불어대니 (권 회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식물 회장'인 상태라는 얘기다.
▶권오준 현 회장, 비자금 조성 '은폐'로 사퇴?
현재 권오준 회장은 CEO로서의 도덕성이 상당이 훼손된 상태다. 지난해 7월 비자금 건이 처음 확인됐을 때 이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포스코건설 감사실은 감사 결과를 권오준 회장과 황태현 사장에게 보고했으나 관련 임원 A·B씨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고 징계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이에 대해 포스코는 "현지 리베이트로만 쓰였다고 봤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이 조성한 비자금 중 상당액이 사용처를 알 수 없는 곳에 쓰인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3월 22일 A씨를 긴급 체포했다.
이런 이유로 권 회장은 비자금 사건을 봉합·은폐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증권정보업체의 한 대표는 "권오준 회장이 비자금 건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권 회장이 전임자인 정준양 전 회장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앞서의 중견기업 고위 임원도 "권오준 회장과 정준양 전 회장은 서울사대부고·서울대 선후배여서 보통 관계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해이든 아니든 이 같은 권 회장의 행보는 상당히 논란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관련 깊은 대우인터내셔널과 포스코플랜텍의 매각에 미온적인데다 비자금 사건을 은폐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 권오준 회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다"고 전했다.
때문에 정·재계 일각에서는 권오준 회장 사퇴론이 솔솔 제기되고 있다. 10대그룹 대관(對官) 담당 임원은 "만에 하나 정준양 전 회장이 비자금 조성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지면, (박근혜 정부의 사정 바람을) 권오준 회장도 비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면서 "결과적으로 (권 회장도) 비자금 은폐 모양새가 돼 CEO로서 도덕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고, 결국 사퇴 수순을 밟아야할 것 같다"고 예측했다. 앞서의 방위산업체 중견간부도 "소나기가 내릴 때는 맞을 수밖에 없다"면서 "정치권 일각에서 비자금 건이 사실로 밝혀지면 권오준 회장이 사퇴해야 포스코 사태가 모두 해결될 것 같다는 분석을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포스코 관계자는 "(모든 것이) 아직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의혹 수준"이라며 "포스코는 수사에 적극 협조해 그동안의 의혹이 투명하게 해소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에디터 jwj@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