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롯데VS신라' 면세점 전쟁 해외에서 2라운드 시작
기사입력| 2015-03-26 10:31:27
롯데그룹과 호텔신라의 면세점 전쟁이 이제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서 전개되고 있다. 국내 면세점 '빅2' 롯데면세점과 호텔신라는 올해 국내 면세점 사업권을 두고 희비가 엇갈렸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2월 인천국제공항 면세사업자 입찰에서 대기업 8개 구역 중 4개 구역을 따내며 호텔신라를 상대로 완승을 올렸다. 심지어 제주도 서귀포 시내 면세점 운영권 경쟁에서도 롯데면세점이 호텔신라를 제쳤다. 최근까지 양상은 호텔신라를 따돌리고 롯데면세점이 독주 체제를 굳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히든카드를 꺼내며 대반전을 일으켰다. 호텔신라가 세계 기내면세점 1위 사업자인 미국 디패스(DFASS)사 인수를 발표했다. 호텔신라와 롯데면세점의 면세점 전쟁이 '세계판'으로 커지면서 본격적인 '2라운드'가 시작됐다.
▶호텔신라, 미국 디패스 인수 카드로 먼저 미국 진출 교두보 마련
호텔신라는 지난 23일 미국 자회사(삼성 호스피탈리티 아메리카)를 통해 면세 기업 디패스 지분 44%를 1억500만달러(약 1176억원)에 매입한다고 깜짝 공시했다. 디패스 지분 인수 계약 조건에는 5년 뒤 지분 36%를 추가로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 항목까지 포함됐다. 사실상 호텔신라가 디패스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셈이다. 디패스는 미국 플로리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면세 사업자로 1987년에 설립됐다. 미주지역을 중심으로 면세 도매유통과 기내 면세점, 공항 및 국경지역 면세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디패스는 기내면세점 분야 세계 1위 업체로 전년도 매출만 5억1800만달러(약 5700억원)를 기록했다.
호텔신라의 디패스 인수는 글로벌 면세사업자로 성장하겠다는 이부진 사장의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호텔신라는 세계 매출 4위 규모인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2013년부터 시계편집매장, 보테가 베네타, 프라다매장을 운영했고, 지난 2월엔 화장품, 향수 면세점을 그랜드 오픈했다. 지난해 10월엔 마카오 국제공항의 면세사업권을 획득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태국 등 동남아시아 시내 면세점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아시아권에 국한됐지만 꾸준히 글로벌 면세 사업자로 성장하기 위한 수순을 밟아왔다. 그런데 이번 디패스 인수로 단번에 미주지역으로 진출하며 진정한 글로벌 면세 사업자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디패스는 세계 항공사 30여 곳에 면세품을 공급하고 있고, 미주 지역에 35개 이상의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호텔신라는 미주 지역 진출의 의미도 있지만, 매출 규모 확대를 비롯해 향수·화장품 브랜드들과의 높아진 협상력을 바탕으로 원가 절감까지 기대하는 상황이다. 특히 향수·화장품은 국내면세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디패스 역시 화장품 유통에 특화돼 있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호텔신라는 디패스를 통해 매출이 13%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호텔신라의 글로벌 경영을 위한 움직임도 상당히 발 빠르다. 호텔신라는 디패스 인수 발표 후 2일만인 25일 글로벌 면세업체 '뉘앙스'의 전(前) 최고경영자(CEO)인 로베르토 그라찌아니를 상임고문으로 영입했다. 그라찌아니 상임고문은 지난해 스위스 면세업체 듀프리로 인수된 스위스 또 다른 면세업체 뉘앙스의 대표이사를 11년간 역임한 면세 사업 전문가다. '신라맨'이 된 그라찌아니는 새로 출범할 호텔신라-디패스 합작사의 부회장직을 겸임하며 글로벌 사업 역량 확대를 책임질 예정이다.
국내에서 롯데면세점에게 인천국제공항, 제주도 시내 면세점을 잇달아 뺏기며 구겨진 호텔신라와 이부진 사장의 자존심이 디패스 인수 카드로 회복됐다. 뿐만 아니라 롯데면세점보다 호텔신라가 글로벌 면세점 사업자로 앞서나갈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확보했다는 평가도 있다.
▶롯데, 세계 6위 면세사업자 WDF 인수로 세계 2위 도약 꿈꿔
국내 면세점 사업자 최강자 롯데면세점은 '독점'이라는 얘기가 들릴 정도로 승승장구하며 올해 경쟁자인 호텔신라를 완벽히 따돌렸다. 그런데 지난 23일 호텔신라가 디패스 인수를 발표하자, 하루만인 24일 이탈리아 면세점업체인 WDF(World Duty Free)에 대한 인수 의사를 드러냈다. 롯데그룹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이 지난 24일 공시를 통해 "롯데그룹은 WDF 인수 추진 여부를 검토 중이나 방법과 시기 등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순 없지만, 인수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롯데면세점과 호텔신라의 면세점 전쟁 2라운드는 이렇게 해외에서 시작됐다.
WDF는 글로벌패션 그룹인 베네통 가문이 50.1%의 지분을 갖고 있는 곳으로 세계 6위 면세점업체다. WDF는 전 세계 21개국에서 533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은 6.98%이다. 롯데면세점은 시장점유율 7.55%로 세계 5위이다. 만약 롯데그룹이 WDF를 인수하면 점유율은 14.53%로 오르고, 세계 1위인 듀프리의 점유율 15.86%에 근접하며 세계 2위 자리를 단번에 꿰찰 수 있다. 롯데면세점과 WDF의 매출을 합치면 2조원이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그룹이 WDF 인수에 성공한다면, 세계 7위인 호텔신라와의 글로벌시장 경쟁에서도 한참 앞서가는 형국이 된다. 호텔신라의 디패스 효과를 단번에 역전시키는 셈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이부진 사장 못지않게 글로벌 면세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롯데는 지난 2013년 4월 국내 업체 중 처음으로 괌공항 면세점 단독 운영권을 따냈다. 이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공항 및 시내,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등에도 롯데면세점을 진출시키며 글로벌 면세점으로 키워왔다. 직접 진출 외에도 롯데는 해외 면세 사업자 인수를 통해 유럽, 미국 시장으로의 진출을 적극 꾀하고 있다.
그러나 WDF 인수전에 만만치 않은 경쟁사들이 참가해 롯데그룹의 승리를 장담하긴 어렵다. 듀프리, 프랑스 미디어그룹 라가르테르 SCA, 미국계 사모펀드 운용사 KKR 등도 WDF 인수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WDF 인수전을 시작했고, 결과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롯데면세점이 세계 톱3로 확고히 자리 잡겠다는 목표에 맞춰서 글로벌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당장 국내는 롯데면세점, 해외는 호텔신라가 디패스 인수로 한발 앞서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롯데그룹의 향후 행보에 따라 면세점업계 지도는 계속 변할 예정이다. 신동빈 회장과 이부진 사장의 자존심을 건 면세점 전쟁 2라운드가 해외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박종권 기자 jk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