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한전 관행화된 뇌물 비리 심각…내부 관리 경영시스템 구멍
기사입력| 2015-02-09 09:23:08
한국전력공사의 내부 비리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잇달아 사법당국에 적발된 사건을 살펴보면 본사 뿐 아니라 계열사까지 범위가 넓었다. 뇌물비리가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비쳐진다. 맞춤형 상품으로부터 정기적 상납까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문제가 터지면 일단 직원의 개인문제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매년 한 차례 이상 정기적인 감사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내부 경영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매년 형식적 감사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비리가 만연되기란 쉽지 않다"며 "윗선의 개입 없이 이뤄질 수 없는 뇌물 비리의 특성상 직원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경영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무너진 윤리경영 선포… 신뢰도 '흔들'
광주지검 특수부는 지난달 14일 뒷돈을 받고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로 전 한전 나주지사장 A씨 등 한전 직원 3명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나주지사 재직 시절 전기공사업체로부터 각각 수천만원의 금품을 수수하고 공사계약 과정에서 일감을 몰아주는 등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제3자 뇌물취득이나 뇌물공여 혐의로 한전 관련 업체 관계자 3명도 구속했다.
한전은 뇌물 사건이 터진 직후 직원 개인의 잘못된 행태로 보고 지역본부차원에서 청렴대책을 발표했다. 직원의 문제일 뿐, 회사 경영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가령 한전은 지난해 12월 나주 본사에서 경영진과 직원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렴 윤리 다짐대회'를 개최했다. 윤리경영을 위해 4개 항목에 서약을 시행하고 결의를 다졌다. 인사·조달·감사분야에 대한 각종 청렴윤리 과제도 발표했다. 정부차원에서 강조하고 있는 공기업 개혁의지를 적극 받아들이기 위한 일종의 화답이다. 특히 지난달 26일 광주전남지역본부 차원에서 '청렴윤리 자율실천 결의대회'도 개최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만에 뇌물비리가 또 터졌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지난 1일 한국전력과 한전KDN, 한국수력원자력 임직원들이 전기통신장비 납품회사 업체대표로부터 3억569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와 관련해 10명을 구속 기소하고 5명을 불구속 기소한 것. 특히 한전 임직원에게 현금, 법인카드뿐 아니라 승용차, 수입 자전거, 골프 레슨비 등 금품이 '맞춤형'으로 제공됐다. 납품업체는 한전 임직원의 전방위 로비 대가로 2008년부터 최근까지 총 63건의 발주사업, 412억원 어치의 납품계약을 따냈다. 검찰에 따르면 납품업체의 로비 대상은 상임감사 등 사내 고위층부터 사업발주 실무를 담당하는 팀장급 직원까지 다양했다. 한전이 납품 비리가 생길 때면 개인의 문제로 치부했던 것과 전혀 딴판이다. 납품비리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뇌물 비리의 경우 단순히 개인 뿐 아니라 윗선으로의 상납 고리가 연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기업의 감사 등) 내부 경영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뇌물비리의 특성상 일회성이 아닌 관행처럼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업계 안팎에선 한전의 최근 납품비리가 관행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내부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전은 현재 본사 감사실에 8개 팀 8명이, 지역본부에도 별도 감사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비리 근절 등의 뚜렷한 효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다.
▶맞춤형 뇌물 비리 진화 '감사 시스템 점검' 시급
나주지사 뇌물 비리의 경우 말단 직원부터 지사장은 전기공사업체로부터 공사금액의 일정부분을 매달 상납 받았다. 특히 나주지사의 직원이 뇌물을 받은 시점이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로 한전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기도 했다. 본사의 경우 뇌물 비리에 있어 제품검수·발주 담당자부터 IT사업 총괄책임자는 기본, 비리를 감시해야 할 상임감사까지 뇌물비리 사건에 얽혀 있었다. 한전의 내부관리 경영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뇌물비리가 관행처럼 자리 잡은 경우 뚜렷한 근절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기업의 경우 뇌물 비리가 발생하면 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대대적 조직개편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계 안팎에선 검찰이 최근 한전이 최근 뇌물 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기타 지역에서 비슷한 정확을 포착, 수사 범위를 확대해 나갈 가능성을 높다고 보고 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