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한전 '국제유가' 이중잣대 논란…전기세 인하 안하나 못하나
기사입력| 2015-01-08 10:01:46
"전기와 가스 공공요금에 유가 절감분이 즉각 반영되도록 하라."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처럼 공공요금을 인하할 것을 주문했다.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있으니 유가절감분에 대한 혜택을 소비자가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경기불황 등으로 인해 팍팍해진 서민가계의 주름살을 조금이나마 펴질 수 있게 정부차원에서 움직여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국가스공사는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아 소매요금을 평균 5.9%(서울시 기준) 내렸다.
반면 전기요금은 제자리걸음이다. 한국전력공사는 국제유가가 상승할 때 원가 상승을 이유로 전기요금을 올렸으나 국제유가가 내릴 때는 '나 몰라라'하고 있는 것. 역으로 한국전력은 환율 상승이나 탄소배출권 시행 등 각종 규제에 대처하기 위해 요금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유가 하락시와 상승시 이중 잣대 들이대
한전은 최근 전기요금 인하 요구에 직면해 있다.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있어 휘발유 가격과 가스비 등 각종 민생 요금도 낮아졌다. 전기요금은 민생요금의 가장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박 대통령도 이 같은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전은 전기요금 인하에 부정적이다. 전력생산에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1%도 안 되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지난달 17일 박 대통령의 공공요금 인하 발언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외부상황(국제유가)이 바뀌고 있다고 해서 전기요금을 쉽게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전기요금과 국제유가가 상관없다는 입장인 것.
한전은 2004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요금을 인하한 적이 없다. 10년 동안 꾸준히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10년 사이 한 해 두 번 이상 요금을 올릴 때(2008년, 2011년, 2013년)도 있었다. 이 때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두바이유·서부텍사스산유(WTI)·브렌트유 가격이 급등세를 보였다.
2011년이 대표적이다. 그 당시 세 종류의 국제유가는 매달 큰 폭으로 올랐다. 그 해 두바이유는 4월 29일 배럴당 119.98달러, 브렌트유는 4월 8일 126.65달러, WTI는 4월 29일 113.93달러를 각각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 5년을 놓고 봤을 때 최고 수준이다.
2011년 한전은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 당시 한전 측은 "기름을 사와서 발전해야 하는 특성상 구입단가 증가로 전력 구입비가 늘어나게 된다"고 밝혔다. 국제유가가 급등했으니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제유가 하락과 전기요금 하락이 무관하다는 현재 입장과 전혀 딴판이다. 지난 6일 기준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48.17달러, 브렌트유는 51.1달러, WTI는 47.93달러를 각각 기록 중이다. 2011년과 비교할 경우 최근 국제유가는 절반이상 폭락했다. 한전이 전기요금과 관련 국제유가 변동에 대해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가 하락세 지속될 듯… 한전의 '모르쇠 행보' 언제까지?
물론 전기요금을 결정짓는 요소가 국제유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원·달러 환율도 요금 결정에 중요한 요소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1100원대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최근 5년을 놓고 보면 높은 수준은 아니다. 전기요금 인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요인들이 긍정적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공공요금 인하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높은 상황"이라며 "정부가 유가하락 등의 외부요인을 반영해 한전에 전기요금 인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지 관심거리다"고 말했다. 전기요금의 경우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이 합의를 거쳐 결정되는 만큼 정부 차원의 노력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국제유가의 하락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두바이유가 올해 평균 63달러가 될 것이라며 유가하락이 한국경제 전반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유가하락이 가계의 소비증가로 이어져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KDI는 "유가하락이 가계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긍정적 영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적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의 압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전의 '모르쇠 행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