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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에서 원수로? 보고펀드, LG실트론 관련 LG그룹에 손배소송

기사입력| 2014-07-30 18:14:18
세계적인 펀드를 목표로 시작한 보고펀드의 변양호 대표가 LG실트론 투자실패를 이유로 물러났다. 보고펀드는 지난 29일 변 대표가 LG실트론, 동양생명 등 보고 1호 사모펀드(PEF)의 남은 투자 자산 회수에 집중하고 앞으로 펀드 투자 운용 업무에서는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변 대표가 LG실트론과 동양생명에 대한 투자 실패를 인정하고 물러나는 셈이다. 그런데 보고펀드가 LG실트론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이 LG그룹에 있다고 보고 LG그룹의 지주사인 ㈜LG와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지난 25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LG그룹 측은 보고펀드가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 손해가 발생한 것이라며 맞소송을 준비 중이다. 한 때 파트너였던 둘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보고펀드, "LG실트론 상장 연기로 지분매입에 사용한 대출금 갚지 못해"

지난 2005년 설립된 보고펀드는 국내 사모펀드 1세대라는 타이틀과 함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동양생명·BC카드·버거킹·아이리버·노비타 등을 인수·합병(M&A)하며 국내 M&A 시장에서 큰 손 역할을 했다. '장보고'에서 이름을 딴 보고펀드는 국내 시장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외국 자본에 대항한 한국 토종 자본임을 내세워 창업 9년 만에 약정액 약 2조원 규모의 국내 대표 사모펀드로 성장했다.

보고펀드의 변양호 대표 역시 스타 금융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의 관료 출신인 변 대표는 '모피아'(재무부+마피아)의 핵심 인사로 꼽힌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외채 협상의 실무를 주도했던 변 대표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세계경제를 이끌어갈 1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관료시절 외환위기, 신용카드 위기 등 국내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촉망받는 관료로 주목을 받았으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과 '현대자동차 로비 의혹 사건'에 얽히며 연일 언론에 오르락내리락 했다. 이 과정에서 10개월의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관료들 사이에서 소신껏 일하면 오히려 피해를 본다는 의미의 '변양호 신드롬'을 탄생시킨 주인공이 됐다.

이번 LG그룹과 소송전은 변 대표가 지난 2007년 KTB프라이빗에쿼티와 함께 LG실트론 지분 49%를 사들인 것이 발단이 됐다. LG가 51%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LG실트론은 국내 반도체웨이퍼 생산 1위업체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서 LG실트론 실적이 악화되면서 보고펀드는 우리은행·하나은행 등에서 빌린 대출금 2250억원에 대한 이자도 내지 못했다. 결국 LG실트론이 상장에 실패하면서 투자자금을 회수하지 못했고 보고펀드는 금융권에서 빌린 2250억원을 갚지 못해 사실상 부도인 상태다. 보고펀드는 BC카드를 KT에 매각하는 등의 성공 케이스도 있지만, LG실트론 때문에 실패의 길로 들어갈 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보고펀드의 첫 번째 투자 실패 사례로 기록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 보고펀드는 LG그룹의 수뇌부가 LG실트론의 상장추진 연기와 그룹 계열사에 대한 무리한 지원으로 LG실트론이 영업난에 빠졌다며 구본무 회장과 LG그룹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보고펀드는 지속적으로 LG실트론의 상장을 추진했으나, LG 임원들의 지시로 상장 추진이 중단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LG를 향한 변 대표의 마지막 수단인 셈이다.



▶LG, "상장 연기는 보고펀드가 제안…보고펀드에 배임강요 강력 맞대응"

LG 측은 정반대의 입장이다. 2011년 일본 대지진과 유럽 재정위기, 미국 신용등급 하락 등 금융시장 불안이 계속 이어져 LG실트론 상장 연기를 보고펀드 측에 제안했고 이에 대해 보고펀드는 어떤 반대 의사도 밝히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이를 근거로 LG는 보고펀드를 상대로 배임강요·명예훼손 등으로 강력하게 맞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흥미로운 건 변양호 대표와 LG그룹 간의 질긴 인연이다.

신용카드 사태가 터진 2004년 전후 변 대표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으로 LG그룹의 LG카드(현 신한카드)를 포기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변 대표를 비롯한 정부 관료들의 결정을 따라야만 했던 LG그룹은 이때 LG카드사를 포함해 금융업 자체를 포기해야만 했다.

관직에서 나와 금융인으로 변신한 변 대표가 LG실트론에 투자하면서 LG그룹과 협력하는 파트너로 인연을 맺는 듯했다. 그러나 법정소송이란 악연으로 결론이 났다. 다만 과거와 달리 변 대표는 자금을 모으러 다녀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란 점이다. 이에 비해 LG그룹은 느긋한 편이다. 변 대표와 LG의 인연, 국내 사모펀드의 첫 실패 사례 등 다양한 이슈가 얽힌 이번 소송에서 법원이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 벌써부터 재계와 증권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종권 기자 jkp@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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