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경영 자질 검증과 곧 맞닥뜨릴 정의선 부회장
기사입력| 2014-05-28 18:21:55
차기 총수로 사실상 확정된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최근 들어 후계 승계의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인도·터키의 생산 라인을 잇달아 점검했고 다음 달에는 브라질, 하반기 중에는 중국 공장을 둘러보는 등 현장 경영에 나서고 있다. 이는 아버지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쏙 빼닮은 모습이다. 현대차그룹은 올 들어 최한영 현대차 상용사업 담당 부회장과 설영흥 현대차 중국사업총괄 부회장을 퇴진시키면서 '정의선 체제' 구축에 들어선 모양새다. 정 부회장도 이노션 지분 40%를 매각키로 하면서 본격적으로 승계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정 부회장은 '글로벌 톱5'인 현대차를 이끌만한 능력을 갖춘 인물일까. 머지않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지분 상속·증여가 본격화되면 정 부회장은 주주들과 시민단체 등의 경영 능력 검증 작업과 맞닥뜨릴 전망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 비전을 제시해야만 하는 험난한 여정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경영 능력 검증 통과? "아직 NO!"
1994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과장으로 입사한 정 부회장은 1999년 현대차 자재본부 이사로 옮겼다.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부품 조달과 자재관리·협력업체 관리 등을 담당하는 자재부문은 자동차 회사의 가장 기초적인 분야다. 부품과 원자재 분야에서 경영수업을 하는 것은 현대가문의 전통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 회사를 제대로 알려면 자그마한 볼트·너트까지 다루는 자재부문에서 먼저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정의선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이 선친인 고(故) 정주영 옛 현대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던 코스를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2001년초 상무로 승진, 구매실장을 맡았고, 2002년 초에는 전무로 승진, 국내 영업본무 영업담당과 기획총괄본부 기획담당을 겸임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2005년에는 기아차의 대표이사(사장)에 오르며 처음 등기이사를 맡았고, 2009년에는 현대차 기획·영업담당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등 후계 승계가 순조롭게 진행돼 왔다.
최근 행보는 더욱 두드러진다. 정 부회장이 갖고 있던 현대차그룹 인하우스 광고대행사 이노션의 지분 40%를 매각키로 한 것. 이를 통해 그는 4000억원을 손에 쥐게 됐다. 이 자금은 현대차·현대모비스 지분 확보에 쓰이거나 정 회장의 보유 지분을 상속 ·증여 받을 때 내는 세금에 사용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이처럼 정 부회장의 후계 승계가 가속화되면서 덩달아 정 부회장의 경영 자질도 재계에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 회장의 외동아들인 이유로 후계 승계가 사실상 확정적인 정 부회장을 놓고 경영 능력에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는 2005년 이후 계속 제기돼 왔다. 정 부회장은 2005년 3월부터 2008년 3월까지 기아차 대표이사를 역임했는데, 부임 이후 기아차 실적이 극도로 저조함에 따라 자질 논란에 휩싸인 것.
기아차는 2005년 5984억원 흑자를 기록한 뒤 정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 2006년에 2930억원의 적자를 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7년 1723억원, 2008년 1059억원 등 내리 3년 연속 적자를 봤다. 게다가 이 기간 중 기아차는 유동성 위기설까지 나돌 정도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 때문에 그 당시 현대차 안팎에서는 그룹 총수 후계자로서 정 부회장의 경영 능력에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이 많았다. 기아차 주가도 2005년말 3만원을 육박하더니 2008년 말에는 5000원대까지 하락했다. 4분의 1토막이 난 것. 공교롭게도 정 부회장이 기아차 대표이사를 퇴임한 다음해인 2009년부터 주가가 뛰기 시작하더니 2011년 4월에는 8만원대까지 올랐다. 이 기간 적자에서 큰 폭의 흑자로 돌아서 순이익이 ▲2009년 1조206억원 ▲2010년 2조6983억원 ▲2011년 3조5192억원 등으로 치솟았다.
이 여파로 대표이사를 사임한 이후 정 부회장은 언론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시 정 부회장이 대중 앞에 나타난 것은 2009년 8월이다. 현대차의 기획·총괄 담당 부회장으로 복귀한 것. 근 1년 반을 은둔한 셈이다. 또한 정 부회장은 20008년 이후 현대차그룹 어느 곳에도 대표이사 직함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최근 증권가 일각에서는 "2009년이후 기아차 실적이 크게 좋아진 것은 정의선 부회장이 그 전에 씨를 잘 뿌려 놓은 덕분"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상 경영 능력 검증은 끝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후계 승계에 대한 컨센서스 형성 'NO'
현대차 내부는 물론이고, 국민이나 주주들 사이에서 후계 승계의 컨센서스 형성도 고민거리다. 오너인 정 회장의 의지와 관계없이 컨센서스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현대차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상장사 주주들이 정 부회장을 그룹 총수로 받아들일지 그 때 가봐야 안다"고 말했다. 복수의 현대차그룹 관계자도 "(전문경영인이 하든 오너가 하든) 그룹 경영을 누가해도 상관없다"면서 "그 때쯤 되면 시스템적으로 굴러갈 것이어서 정 부회장이 (그룹 회장을) 꼭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어느 시점에 가서는 원활한 후계 승계를 위해 '글로벌 톱5' 현대차의 최고경영자(CEO)에 걸맞는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게다가 그는 현대차그룹의 금융계열사(현대캐피탈·현대카드·현대커머셜·HMC투자증권·현대라이프)를 놓고 매형인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다. 정태영 사장은 정 회장의 차녀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의 남편으로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 성장에 큰 공을 세웠다. 이런 이유로 정명이·정태영 부부가 정 회장에게 금융계열사를 달라고 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무성하다. 정 부회장은 자동차산업에 금융계열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자동차산업과 금융산업의 획기적인 시너지 방안을 내놔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는 셈이다.
정 부회장의 CEO로서의 리더십도 논란거리다. 과연 아버지인 정 회장과 같은 리더십을 갖췄냐는 것. 정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으로부터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았다. 옛 현대그룹 내에서 동생인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의 치열한 후계 경쟁을 치른 뒤 오늘날의 현대차그룹을 일궜다. 그러나 정 부회장은 외동아들이어서 후계 승계는 처음부터 확정적이었다. 가시밭길에서 단련된 정 회장과 온실 속에서 지내온 정 부회장이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조완제기자 jwj@sportschosun.com